야고보는 이 장에서 믿음과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를 이런 말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골로새서 1:3-4)
야고보서 2:1-13
야고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축복하는 순종적인 행동으로 인도하는 믿음에 근거하여 부자와가난한 자의 연합을 포용하는 성경적 세계관을 가져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인종과 계층 간의 분열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됨을 표현하기 원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즐겨부르던 찬양이 있었습니다.
“우린 성령 안에 하나, 우린 주님 안에 하나…
우린 기도하네 하나됨 회복될 그 날 위해 …
우리 함께 걸으리 …
우리 함께 걸으리 …
각 사람의 존귀함을 지키고 그들을 세워주리 …
모든 찬양 아버지께 만물 함께 찬양
모든 찬양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께
모든 찬양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께” (1966. By 피터 스콜테스 신부 (Fr. Peter Scholtes)
야고보는 가난하고 부유한 그리스인의 연합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나중에 3장과 4장에서 그 결론을 맺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무시하면서 부자들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이는교회들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상황에 대해 세속적이고 경건치 않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친화적인 믿음 (world-friendly faith)”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절에서 이것에 대해 경고합니다.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의 사고와 가치 체계를 따라갑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심어주셔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인종적인 편견,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한 자들의 압제,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회의 악입니다. 그모든 것들은 우리 사회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발견됩니다.
야고보가, 부유해지는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자신들의 부요함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신 부요함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청지기가 되었음을이해하는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사 시대의 수넴 여인 (열왕기하 4장)과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땅을 드려 사용할 수 있도록 했던 레위인 바나바를 기억합니다.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그가 가진 부는 또한 사도 바울과 함께 했던 1차 선교 여행을위한 재정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에 걸쳐서 볼 때 경건한 남자와 여자들의 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촉진시켰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 즉 맘모니즘(mammonism)입니다. 부한 자들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도 쉽게 돈을 사랑하는 덫에 빠집니다.
야고보는 부유하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이 짧은 편지의 상당한 부분에 할애했는데, 이것은 이문제가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의 주된 문제였음을 보여줍니다. 야고보는 모임의 안내자가 가난한 사람을차별하는 교회 모임에 대해 묘사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부유한 사람들을 특별한 사람들로 대우하고 있었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판단하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했고, 그들자신이 율법에 의해 심판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3가지 혐의를 그들에게 제기했습니다. (2:6-7)
-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압제하는 것
- 가난한 자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
-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욕되게 한 것
왕의 법 (The Royal Law)
그는 성경에서 “최고의 법”이라고도 불리는 왕의 법 (The Royal Law)을 지키라고 강권합니다. (2:8) 이“왕의 법”에 대한 가장 뛰어난 설명은 신명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설교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그가 율법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던 신명기 10:12-22절에서 발견됩니다. 지금 잠시 동안 이 중요한 구절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계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살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나기 시작될 것입니다. (성경 공부를 풍성하게 하는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성경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와 비슷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여 살펴보는것입니다. 관주 성경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공부의 기본적인 원칙은 말씀으로 말씀을 해석하는것입니다.)
미가서 6:8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 [미쉬파트: mishpat]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 두 구절은 야고보가 교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을 권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을믿고, 그를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우리의 모든 마음과 영혼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왕의 법은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자유의 율법
“자유의 율법, 또는 해방의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2:12)? 그것은 성령의 법입니다. 로마서8:1-2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자유의 법”은 새로운 법이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에 순종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사망의 법이었습니다. 죄인들이 죄로부터 돌아서도록 도와줄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 법”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줍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잘 표현했습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13) 새 예루살렘성경 (Revised New Jerusalem Bible)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긍휼은 심판을 넉넉히 비웃을 수 있다.” 긍휼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며,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는 공의를훼손하지 않습니다. 공의를 넘어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요구 아래 서 있지 않습니다. 그 요구들위에 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에게 주신 회막의 청사진은 회막의 각 부분들의 위치를 보여줍니다. “지성소”에서 발견되는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돌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궤 위 “속죄소”, 또는 시은좌 (은혜의 보좌)”에 임하십니다.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그 모든 길 가운데 의로우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의는 사랑의 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16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우리는 그분과 같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2:14-26
이 섹션에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설명합니다. 야고보 2:14 – “내 형제들아 만일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해 준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
주된 포인트는 믿음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선한 행동으로 결과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진정한 영성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영성은 안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를 축복하고큰 평안과 기쁨을 갖게 해 줍니다. 진정한 영성은 세상 밖으로 흘러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클수록, 세상 속으로 더 많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개인적으로 더 큰 축복과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그것을 받는 사람보다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행함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리려 한 것은 믿음과 상관없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한 것에 대한순종이 그의 믿음을 완성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본토를 떠나 주님을 따랐던 이전의 순종을통해 완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순종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12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야고보의 가르침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야고보와 바울 모두 믿음이 단지 올바른 교리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믿음은 그에 따르는 선한 행동을 통해 완성됩니다. 야고보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사람이 말하는 믿음은 단지 생각에만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믿음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야고보는 야고보서 2:18절에서 이렇게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행함은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의 행함은 믿음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행하기 원하시는 특별한 일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만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함께 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 우리는 온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세상을 위해 중보해야 합니다.
- 우리는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야 합니다.
- 우리는 이 사회의 연약한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 우리는 가난을 없애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 우리는 인종적 편견과 싸워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 이웃과 세상의 모든 나라들 가운데 화해와 평화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 우리는 궁핍한 자들을 파멸시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말로써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새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사랑하라는 “지상대명령”을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하는 일보다, 우리는 하지 않는 일, 또는 우리가 반대하는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낙태를 반대하고 동성에를 거부하는 것으로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두 가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낙태를 제한하며, 성적인 혼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를 가져다주기 위해 일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지 그들을 반대하기만 하고, 그들이 이 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한다면, 우리는 외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외식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완화시키기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아주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려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힘이 없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고, 압제 당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일어서며,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인신매매와 싸우고, 또는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채우라는 기초적인 명령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악을 향해 반대의 목소리를 외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것도 하지 않으면서 의로운 사람인 척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까?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생각해 볼 질문들
- 오늘날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들이 우리의 지역교회와 공동체에서 시작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우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긍휼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오늘날 자비의 영이 되살아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이해하십니까? 만일 마틴 루터를 만난다면 야고보서를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어떻게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 사복음서 전체를 읽으면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당신은 야고보가 편지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거의 똑 같다는 것에 놀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