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November 2020

Job Lesson Six

Job 19:1—21:34  Job begins to discover the hidden treasure in his suffering. (Second Cycle of Arguments Part B) Second cycle of arguments (A)   Job replies to Bildad 19:1—29  Job begins to mourn the fact that God has fenced him in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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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제6과

욥기 19:1—21:34  욥이 고난 중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기 시작하다 (두 번째 변론 Part B) 두 번째 변론 (A) 빌닷에 대한 욥의 대답 19:1-29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두어 놓고 형제들을 그로부터 멀리 떼어 놓으셨다는 사실에 슬퍼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19:8) 욥은 모든 사람들과 멀어졌습니다.  그의 형제들과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잊었습니다.  그의 종들은 그를 낯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땅에서 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치셨기 때문에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욥은 그가 겪는 고난 속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욥은 구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19:25-27) 이 구절은욥기에서 가장 중대한 시점입니다.  게오르그 프레데릭 헨델은 이 몇 구절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구절들로 그의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The Messiah)”에서 찬양의 절정의 순간을 구성했습니다. 이것은 욥기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크게 기여한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욥은 자신의 고백이 갖는 위대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셨을 때, 구속자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불의가 최종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이사야와 바울이 그 뒤를 이어서 불의한 세상에 공의를가져오시는 구속자를 드러낼 것입니다.  욥이 가장 큰 낙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진실입니다. 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실제로 구덩이 속에갇혀서 큰 고통과 낙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사도 바울에게도 이것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한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은 그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무대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9-10) 욥의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심령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본질적으로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성령의 권능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인간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내려놓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인 지식에 만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을 꺼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많은 친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욥은 환경이나 사탄의 공격에 의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시고, 욥이 거의 상상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그에게 특별한 생각과 비전을 허락하십니다. 욥은 나중에 그를고난 속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도록 이끌어 줄 보석들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의오묘한 것들”의 면모를 주고 계십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하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그들의 합리적인 신학보다 더 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제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왜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의 의롭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욥이 가장 어두움 가운데 있었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셨습니다. 욥기 19:25-27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욥이 구속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한연약함 가운데 있는 욥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욥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나의 구속자로말합니다. “나는 아노라, 구속가 살아계신 것을. 나는 그를 볼 것이라.” 욥은 엄청난 비극과 고난 속에서도 그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하소연했지만,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불의는 마지막말이 아니라고 주저 없이 선포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위대한 것, 또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더 위대한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구속자로 말할 때, 그는 이사야 40-66장과 시편 전체, 그리고 신약에서 발견되는 고백의 예표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구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욥은 구속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기대는 구약 전체에 걸쳐 주어진 많은 예언들, 특히 시편과 이사야의 예언에 반영되어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욥기 4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소발의 변론 20:1-29 이것은 소발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다른 두 친구들과는 달리 세 번째 변론에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변론에서 세 친구 중 아무도 욥에게 소망을 약속하며 끝맺지 않습니다. 소발은 더 나아가서 욥이땅에서 가장 악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욥이 자신을 부끄럽게 했고,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발은 욥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악한 자들에 욥을 포함시키는 아주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그를비난합니다. 그의 이야기의 주제는 같습니다. 악한 자는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욥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욥을 가난한 자들을 멸하고 방치하는 악한 자에 포함시킵니다.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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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Lesson Five

Job 15:1—18:21 Second Cycle of Arguments Between Job and His Friends (Part A) Second Cycle of Arguments (A)  The attitude of Job’s three friends changes dramatically in this second cycle. They have lost their compassion and have absolutely no mercy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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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제5과

욥기 15:1—18:21 욥과 친구들의 두 번째 변론 (Part A) 두 번째 변론 (A) 욥의 세 친구들의 태도는 두 번째 변론에서 극적으로 변합니다. 그들은 긍휼의 마음을 잃어버렸고 욥에대해 전혀 자비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친구 욥의 고난을 위로하기 위한 사랑으로 그토록 먼길을 왔던 친구들이 얼마나 빨리 인내심을 잃고 위로자가 아닌 고발자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그들을 악한 사람들로 만들지도 않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말하는 욥 또한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우정에 있어서 이처럼 명백한 가로막힘은 우정에 대해 무엇을 드러냅니까? 확실한 것은, 우정에 있어서 자비와 긍휼이 항상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 또한 우정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학은깔끔하고 간결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인간적인 지식을 넘어서 나아가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이며, 그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한 욥의 이해를 넓혀 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가르치는 방법을 소화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이해의 렌즈로만 욥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친구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어떻게 서로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친구는 서로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언가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욥에게만 아니라 그들 자신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줄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욥과 친구들은 서로를 향한 커다란 분노로 대화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정의 또 다른 특징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충돌할 때에도 서로를 빨리 용서해야합니다. 우정에 있어서 판단주의 (judgmentalism)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했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국에 그들의 우정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서로 용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고난에 대해 인간적인 논리로 줄 수 있는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노한 욥이나 친구들 모두 그 진리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안에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 번째와 세 번째 변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가 두 번째 변론을 시작합니다. 15:1-35 엘리바스에 관해 주목할 것들 그가 욥에게 처음 말할 때 보여주었던 인내심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욥의 지혜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에대한 지식과 그가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지금이 하나님께 도전하고, 친구들의 지혜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욥을 꾸짖을 때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않으시고 천국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한데 (의문스러운가정),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 신뢰가 얼마나 덜 하겠냐고 알려줍니다.   그는 구약의 모든 의로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었던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로욥을 판단합니다. (엘리바스는 생각을 바뀐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4:6절에서 욥에게 “네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지어 욥이 하나님을 묵상을 방해한다고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뇌물을 받는 위선자로 부릅니다! (15:34) 그리고 나서 그는 일반적인 악인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거의 설교와 같았고, 심지어욥에게 직접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욥의 원망을 무시하고, 단순히 욥을 악한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욥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욥이 자신의 입으로 그를 정죄한 것이라는 것을유지함으로써 자기의 (self-righteousness)를 드러냅니다.   엘리바스는 확실히 정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사람들중에 가장 의로운 자로 말씀하신 친구의 고난에 대해 긍휼의 마음이 없는 냉정한 정통이었습니다.  욥은 이제 그들의 삶의 토대가 되는 신학 체계에 도전합니다.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욥을도와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시작합니다.  욥의 대답. 16:1-17:16 욥은 지금 완전히 혼자라고 느낍니다. 친구들은 그를 아주 죄악 되고 악한 사람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재난을 주는 위로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상황이 역전되면 자신이 어떻게 말할지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16:5)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를 피로하게 하셨고” (16:7)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다는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고” (16:8),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고통 속에서 욥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데 계시니라” (16:19) 이 증인이 누구입니까? 욥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러한 중보자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욥의 소망은 나중에 그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물론 그는 당시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증인과 하늘의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1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은 욥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감당해야 할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욥에게 이처럼 놀라운 소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의 그의 완전한 구원에 대한힌트를 주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자 마자 바로 욥은 고통과 고난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다시 한번 그의 영은 깨어졌고, 더 이상 계속해서 살아갈 목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빌닷의 변론 (18:1-21) 빌닷은 세 친구들 중에서 가장 피상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지금 모든 자비와긍휼을 잃어버렸고, 욥에게서 어떤 소망도 보지 못합니다. 그는 욥에게 아주 안하무인으로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고 이야기합니다.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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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Lesson Four

Job 10:1—14:22 First Cycle of Arguments Between Job and His Friends (Part B) First Cycle of Arguments (B) Job’s Plea to God (10:1—22)  After responding to Bildad, Job then makes a desperate plea to God (10:1—22). He begins by loathing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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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제4과

욥기 10:1—14:22 욥과 친구들의 첫 번째 변론 (Part B) 첫 번째 변론 (B) 하나님을 향한 욥의 간청(10:1—22) 빌닷에게 반응한 뒤 욥은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합니다. (10:1-22)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증오로 시작해서, “왜?”라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10:2)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 도전합니다. 그가하나님께 그를 놀라운 방법으로 창조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처음부터 자신을 저주하고 멸하려고 하셨던 것이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에 대해 거의 이단처럼 말할 뻔했습니다. (10:11-13) 그는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잠시나마 평안할 수 있도록 자신을 홀로 내버려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0:20-22) 소발이 이제 말하기 시작합니다. (11:1-20)  소발에 관해 주목할 만한 내용들: 소발은 세 친구들 중에 가장 동정심이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고 욥에게 말했습니다. (11:6) 그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신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욥의 문제가 올바른 교리에 대한 무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의 오묘함” (11:7-9)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오묘함의 4가지 범주를 제시합니다.   하늘보다 높은– 네가 무엇을 하겠느냐? 스올보다 깊은 – 네가 어찌 알겠느냐? 땅보다 긴 바다보다 넓은 그는 비꼬는 듯한 진술로 결론을 맺습니다. 야생 들나귀가 사람을 낳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소발이 좋은 신학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가 욥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또한 분명합니다. 소발은 다른 두 친구들보다 더 자비와 긍휼이 부족했습니다. 소발은 자신이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의 네 가지 범주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소발이 말하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에베소서 3:14-19)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높이 –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이 우리를 끌어올리십니다.  깊이 – 하나님의 사랑은 지옥보다 깊습니다. 그분은 사탄의 모든 계획을 멸하시고, 가장 깊은 어둠의 시간 동안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길이 –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며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항상 우리를 그분의 손으로 붙잡고 계십니다.   넓이 –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온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의인이 받는 고난을 이해하기 위해 집단적인 공동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론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고난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중에 높은 사랑, 즉 우리를 구속하시는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깊은 사랑, 즉 절망의 깊은 어둠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고 긴 사랑을 알게되고,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중에 행하시는 더 큰 일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알게 될 것이며, 고난을 통해 우리를 확장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고통 가운데서 사역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소발은 회개하라고 욥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소망을 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삶이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욥이 소망 가운데 다시 걷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Job responds. 12:1—14:22 욥의 반응. 12:1-14:22 욥은 소발에게만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 친구들 모두에게 함께 반응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론입니다. 첫째, 그는 친구들에게 응답했습니다. (12:2-13:16) 그리고 나서 13:17-14:22절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합니다. 욥의 이야기의 움직임이 어떻게 그의 친구들에서 점점 멀어져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지에 주목하십시오. 그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싶다고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기 원했습니다.  욥은 아주 비꼬는 말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그런데 그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의 악한 행위 또한 저주받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친구들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매우 단순한 이해만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12:13-25) 욥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뿐 아니라 멸하시고 헐어내실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는 구원을 가져오시며, 불의를 바로 잡으십니다.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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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Lesson Three

Job 4:1—9:35 First Cycle of Arguments Between Job and His Friends (Part A) First Cycle of Arguments (A) Shocked by Job’s response to his suffering, his three friends began to speak. They tried to reason with Job, and to instruct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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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재3과

욥기 4:1-9:35 욥과 친구들의 첫 번째 변론 (Part A) 첫 번째 변론 (A) 고난을 대하는 욥의 반응에 놀란 세 친구들은 말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욥을 설득하려 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려 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그들의 변론은 욥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4:1-31:40)  때로, 욥의 친구들은 욥을 격려하고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를 비난했습니다. 처음에 그들모두는 소망을 주지만, 결국에 가서는 욥을 비난하고 공격하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그들이 욥의 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던 좋은 친구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해결책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세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공부하는 동안 각각의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욥이 거기 있었다면 어떻게 그를 위로할 것인지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엘리바스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가장 큰 어른이었습니다. 42장에서 친구들에게 말씀하실때, 하나님은 엘리바스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들 중 리더였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엘리바스에 관해 주목할 내용들 엘리바스는 욥에 대한 온화한 책망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마음이 그에게 확신을 줄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욥에게 사람은 고생을 위해 태어났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조언자처럼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욥을 격려하는 중에도 하나님에 대한신뢰가 부족하다고 욥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죄 없이 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4:7-8)을 욥에게 떠올리게 하면서 부드럽게 그를 꾸짖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이상 조언자가 아니었으며, 현명한 신학자처럼 말하기로 결심합니다. 엘리바스는 아주 정통적인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물론 그가 따르는 정통성은 율법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을 들을 때 욥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철저한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자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신실하게 섬겨 왔던 하나님이 이제 그에게서 돌아섰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4: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 그는 잠들 즈음에 깊은 환상이 임했다고 말했습니다. 욥기 4:15-16절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입김이 나의 얼굴을 스치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네.” (북한성경 번역) 그리고 나서 그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그는 하나님께서 욥에 대한 비밀한 것을 속삭이며 말씀하실 정도로 자신이중요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5장부터 엘리바스는 욥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욥에 대해 무감각해져버렸습니다. 동시에 그는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5:8)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정통 율법 신학자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욥에게 정통적인 교리, 즉 율법의 정통적인 가르침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받는 유익에 대해 욥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요약: 욥이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어떤 재앙도 그에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재앙이 임했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을 찾고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징계하심 뒤에 많은 복이 뒤따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5:27절에서 그는 세 친구 모두를 대표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엘리바스의 신학은 아주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욥이 경건한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욥은 (6:1) 자신의 생명이 숨결에 지나지 않으며, 그 영의 괴로움 속에서 말하고, 영혼의 괴로움 속에서불평할 것이라고 반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솔하게 말했으며, 자신의 말이 경건하지 못했을 수 있음을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악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께 자신을 멸하시고 끊어 달라고 구했고, 왜 이처럼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가르쳐 달라고 요청할 뿐이었습니다. 욥은 세 친구들 모두가 이 참혹한 일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넌지시 말합니다. 그들의 정돈된 정통의 틀로는 설명할 수없었기 때문입니다. (6:21) 욥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이었지만 동시에 반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7:11절에서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 (7:20)로 부릅니다. 욥은시편 8편에 기록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라는 말씀을 비틀어서 말합니다. 시편 8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을 그처럼 높이시는 것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시편을 잘못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왜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찾아오셔서 매 순간 그를 시험하시는지 묻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왜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시는지 질문함으로써 그의 반론을 끝맺습니다.   빌닷이 (8:1)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빌닷에 관해 주목할 내용들 빌닷은, 고난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며, 욥의 자녀들의 죽음은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욥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죄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해야 할 일은 회개 뿐이며, 그러면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8:6)고 말합니다. 8:4-6절에서의 빌닷의 말들은 비꼬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빌닷은 욥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둔감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직설적이었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다는 엘리바스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고 나서 그는 욥에게청결하고 정직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빌닷은 소망으로 그의 변론을 마무리합니다.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1절) 욥기에 나오는 빌닷의 세 번의 변론들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피상적인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그는 욥을 돕고자 했지만, 욥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판단합니다.  욥의 반론 (9:1-35)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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