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hives
- April 2021
- February 2021
- January 2021
- December 2020
- November 2020
- October 2020
- August 2020
- July 2020
- June 2020
- May 2020
- April 2020
- March 2020
- September 2019
- April 2019
- January 2019
- November 2018
- October 2018
- March 2018
- January 2018
- July 2017
- December 2016
- July 2016
- March 2016
- November 2015
- October 2015
- July 2015
- April 2015
- February 2015
- January 2015
- September 2014
- August 2014
- July 2014
- June 2014
- May 2014
- April 2014
- March 2014
- February 2014
- January 2014
- December 2013
- November 2013
- September 2013
- August 2013
-
Meta
Author Archives: davidearlross
Seed of the Word of God
(I’m not sure of all the sources of this article – some of it is mine, some parts I borrowed; but it helps us understand the Christmas miracle.) [Suggested reading: Luke 1:26-45] As we approach the last Sunday of Advent, we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Job Lesson Nine
Job 32:1—37:24 A Strange Young Man Opens the Door to God Elihu enters the conversation. Job 32:1—37:24 Chapter 31 ended with the words “the words of Job are ended.” (31:40) But the words of God are not ended. God begins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욥기 제 9과
욥기 32:1—37:24 하나님을 향한 문을 연 미지의 청년 엘리후가 대화에 참여하다 욥기 32:1-37:24 31장은 “욥의 말이 그치니라” (31:40)는 말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욥과 그의 친구들 모두에게 이야기할 청년을 먼저 보내심으로써 욥을 향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오늘의 성경공부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청년 엘리후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성경은 엘리후에 대해서 욥기 밖의 어디에서도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람 종족 부스 사람이라는 것 외에 역시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바라겔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32:2) 엘리후의 이름 뜻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주님의 길을 예비할 “광야의 소리”로 보내셨는지도 모릅니다. 사실이것은 그가 이 논쟁에서 그가 공헌한 한 가지였습니다. 엘리후가 여전히 말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 자신이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여섯 장에 걸쳐서 엘리후는 네 번의 변론을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그가 네 개의 다른 강조점으로 하나의 변론을 말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을 네 개의 변론으로 분석할 것입니다. 욥기 32-33장 엘리후의 첫 번째 변론 엘리후는 자신에 대한 소개와 자신의 말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 첫 번째 변론을 시작합니다. 그는하나님보다 자기를 의롭다 하는 욥에게 화를 내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의고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를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분노를 돌립니다. 그는 인간의 지혜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자기 자신의 지혜도 제한적이라는 것을 잊은 듯 보입니다. 그는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모든 지혜가 전능자의 숨결, 즉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고 말할 때(32:8)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혜가 충만하다고 말할 때는 전혀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32:18)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후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욥과 그의 세 친구가 하나님에 대해 하고 있는 비난과 거짓 진술로부터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해 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엘리후의 분노는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그는 너무 겸손하지 않았지만 반면에 이성적이었습니다. 엘리후는 그의 첫 번째 변론의 마지막 부분에 욥에게 향합니다. 그는 더 부드럽게 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33:32) 그는 욥과 동질감을 느끼려 노력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 중에서 말씀하고 계시며, 만일 욥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멈추고 그 대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거기 더해서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킬 대속물을 주실 중보자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33:24) 그는 “그는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33:26)는 말로 욥을 격려했습니다. 욥기 34장 엘리후의 두 번째 변론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에게 두 번째 변론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그의 모든 판단에 의로우시다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그는 욥이 지식이나 통찰력이 없이 말했다는 데 동의합니다. (34:35) 또한 욥이 하나님께 반항했다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는 욥의 친구들을 총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의 변론을 계속합니다. (34:10)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와 그분의 공의 (미쉬파트: mishpat)에 대해 계속해서 확언합니다. 엘리후는 욥과 그의 친구들 모두에게 인간의 이성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다른 세 친구들도 함께) 욥은 작다는 그의 주된 논거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욥이나 그의 친구들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그의 말은 옳습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겸손함으로 그분께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욥기 35장 엘리후의 세 번째 변론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께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기 위한 공개적인 재판을 하도록 요구한 것을 계속해서질책했습니다. 이것은 욥에 대한 그의 가장 큰 고발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옳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감히 주장했습니다.” (참고도서 Job: The Faith to Challenge God, by Michael L. Brown) 그런데 엘리후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35:10)라는 말로 그들 모두를 질책합니다. 이것은 엘리후의 긴 변론을 말하는 가운데가장 힘 있는 진술이었습니다. 엘리후가 말한 많은 것들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의로운자가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욥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욥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엘리후가 “때때로 인간의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통찰력 있는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M. Brown,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Job Lesson Eight
Job 29:1—31:40 Job’s Final Speech Job 29:1—31:40 Job gives his final speech. He begins by remembering his former days, just a few months before tragedy struck. Two things stand out: 1. His relationship with God. (29:1—6) Job began with his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욥기 제 8과
욥의 마지막 변론 욥기 29:1—31:40 욥이 마지막 변론을 합니다. 그는 비극이 닥치기 몇 달 전, 그의 지난 세월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29:1—6) 욥은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던 때…” 그리고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 속을 걸어다니던 때”의 하나님의선하심에 대한 기억들로 시작합니다.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만 약속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누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29:7-25) 그는 이전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빈궁한 자들의 아버지이자, 약한 자들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는 “군대 중에 있는 왕처럼” 모든 지혜자들의 으뜸 되는 자리에 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난의 시간들이 그에게 닥쳤고, 그는 먼지나 재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욥에 대한 더 나은 그림을 보여줍니다. 욥기는 비유가 아닙니다. 욥은 허구로 지어낸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축복을 받았지만 깨어졌던 실제 인물입니다. 욥은 그의 남은 생애 동안 이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높은 지위를 누렸지만, 동시에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며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이전 삶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욥기 29장과 현재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욥기 30장사이의 간격은 너무 넓습니다. 욥기 30장은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욥기는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인 단순한 젊은 자들”이 욥을 어떻게함부로 대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의 버림받은 자들로부터 조롱과 업신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고, 욥에게 몰락을 가져다줄 어떤 재난이 닥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30:9) 욥은 이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연약했고, 그의 삶은 무너졌으며, 그는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욥은 30장에서 세 번 “그러나 이제는” (1, 9, 그리고 16절)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마지막인 16절에서, 욥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릅니다.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30:16) 욥은 그가 겪는 이 큰 고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보호하심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에(30:11) 하층민들이 그를 핍박하게 하게 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던지셨고, 티끌과 재같게 하셨습니다. (30:19) 욥이 “티끌과 재”라는 이 표현을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게 된 뒤에 다시 사용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신 뒤에 욥은 더 이상 자신의 비천함을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합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굴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굴욕은 나중에 그에게 진정한 겸손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도구가 되었음이 증명됩니다. 욥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31:1-40) 이것은 욥의 모든 변론 중에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서와 하나님 앞에서 그가 흠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눈과 약속합니다. 그는 탐욕으로 처녀에게 주목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31:1)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 장 전체에 걸쳐서 어떻게 욥이 “만일”이라는 말로 자신의 결백의 선언을 시작하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31:5, 7, 9, 13, 21, 24, 25, 26, 29, 31, 33, 38, 39) 욥은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면밀하게 살피시기를 초청합니다.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확신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잘 대했습니다. 욥이 자신의 종들, 가난한 자들, 고아, 과부, 심지어 원수들에게까지 어떻게 대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욥의 서명이 여기 있습니다! (31:35) 구약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욥과 에스겔 단 두 사람뿐입니다. 이것은 그의 표시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만일 죄가 있다면 그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했습니다.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욥기 제 7과
욥기 22:1—28:28 세 번째 변론 세 번째 변론 (욥기 22:1 – 28:28) 엘리바스의 변론 22:1-30 엘리바스에 관해 주목할 것들 엘리바스와 그의 친구들은 수년 동안 욥을 알았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그의 정직한 삶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욥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정통적인 율법 신학을 거부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제 욥을 악하다고 결론짓습니다. 엘리바스는 그것을 자신의 율법적인 시각 안에서 해석합니다. 욥이 악인들이 처하게 될 운명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욥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욥에게 유죄를 선포합니다. 엘리바스의 말들, 특히 5-9절은 책 전체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혹독하면서, 사실이 아닌 말을 욥에게 말합니다. 이 때까지 욥에 대해 가장 큰 긍휼을 보여주었던 엘리바스의 입에서 그 말들을 듣게 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냐?”고 욥을 비난합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밀한 죄까지도 보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갑지가 소망으로 돌이켜서 욥에게 만일 하나님께 돌아가서 그의 죄를 고백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의 신학은 율법주의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욥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는 세 친구들 중에서 욥에 대한 자비와 긍휼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엘리바스는 자신이 곧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나서 욥의 기도를 통해 회복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대답. 23:1-24:25 욥은 그가 처음 변론에서 했던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말합니다. 그는 엘리바스가 했던 대부분의 말을무시합니다. 23:3—5 욥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고자 하는 깊은갈망으로 외칩니다. 그것은 펠릭스 멘델스존이 그의 오라토리오 엘리야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그의 임재 안에) 나아가랴 (23: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난 속에서 욥에게 드러내신 하나님의 오묘한 것들의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욥은그 깊은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때에도 진리를 말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어떻게 발견할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분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변론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욥의 친구들의 거짓된 고발은 실제로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갈급함을 가지고 시도하도록 몰아가는 유익이 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공의나 자비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그분을 어떻게 발견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23:10 욥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욥이 어디 있는지 아셨고, 그를 보고 계셨습니다. 욥은 아주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신 것임을 이해하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소망을 표현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불 같은 시험 속에 그를 두시고 그를 연단시켜서 나오게 하실 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우리가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계속해서 고백할 수 있는 힘에 대한 비밀을 알려줍니다.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 23:14 “그런즉 내게 작성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이것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고 (시편 119:11) 말하는 시편기자의 고백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욥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내 상황을 변론하리라!” 24장은 악인들의 행위와 가난한 자들의 고난을 다룹니다. 또한 욥은 악인들의 최종 형벌에 대해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말함으로써 욥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악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24:12) 욥은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대한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는 심지어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욥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고통받는 의인을 위한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음으로써 엘리바스에 대한 대답을 끝맺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빌닷은 욥에 대해 조급하게 반응합니다. 25:1-6 그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실 만하며, 구더기 같고 벌레 같은 인간은 천하고 죄가 많다는것 말고는 거의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세 친구들 중 아무도 다시 말하지 않습니다. 소발은 욥을 꾸짖을 세 번째 기회를 가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빌닷이 자신의 변론을 말하는 데는 단 6절이면 되었습니다. 세 친구들의 우물은 말라버렸습니다. 욥이 자신의 변론을 요약하기 시작하다. 26:1-28:28 이제부터 여섯 장은 욥의 모든 변론의 절정을 이룹니다. 그는 친구들에 대한 그의 변론을 요약합니다. 욥은 먼저 빌닷에게 대응합니다. 그는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26:2) 그는 빌닷에게 “그런 고난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도왔는가?”와 같은 질문을 계속합니다.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빌닷이 아는 모든것을 알고 있으며, 빌닷이 고통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한 것 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7장을 시작하면서 욥은 세 친구 모두에게 이야기합니다.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Job Lesson Seven
Job 22:1—28:28 Third Cycle of Arguments Third Cycle of Arguments (Job 22:1 – 28:28) Eliphaz speaks. 22:1—30 Things to notice about Eliphaz Eliphaz and his friends have known Job for many years and have witnessed his upright life, favored by God. But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Job Lesson Six
Job 19:1—21:34 Job begins to discover the hidden treasure in his suffering. (Second Cycle of Arguments Part B) Second cycle of arguments (A) Job replies to Bildad 19:1—29 Job begins to mourn the fact that God has fenced him in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욥기 제6과
욥기 19:1—21:34 욥이 고난 중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기 시작하다 (두 번째 변론 Part B) 두 번째 변론 (A) 빌닷에 대한 욥의 대답 19:1-29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두어 놓고 형제들을 그로부터 멀리 떼어 놓으셨다는 사실에 슬퍼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19:8) 욥은 모든 사람들과 멀어졌습니다. 그의 형제들과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잊었습니다. 그의 종들은 그를 낯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땅에서 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치셨기 때문에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욥은 그가 겪는 고난 속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욥은 구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19:25-27) 이 구절은욥기에서 가장 중대한 시점입니다. 게오르그 프레데릭 헨델은 이 몇 구절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구절들로 그의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The Messiah)”에서 찬양의 절정의 순간을 구성했습니다. 이것은 욥기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크게 기여한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욥은 자신의 고백이 갖는 위대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셨을 때, 구속자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불의가 최종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이사야와 바울이 그 뒤를 이어서 불의한 세상에 공의를가져오시는 구속자를 드러낼 것입니다. 욥이 가장 큰 낙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진실입니다. 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실제로 구덩이 속에갇혀서 큰 고통과 낙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사도 바울에게도 이것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한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은 그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무대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9-10) 욥의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심령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본질적으로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성령의 권능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인간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내려놓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인 지식에 만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을 꺼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많은 친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욥은 환경이나 사탄의 공격에 의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시고, 욥이 거의 상상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그에게 특별한 생각과 비전을 허락하십니다. 욥은 나중에 그를고난 속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도록 이끌어 줄 보석들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의오묘한 것들”의 면모를 주고 계십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하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그들의 합리적인 신학보다 더 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제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왜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의 의롭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욥이 가장 어두움 가운데 있었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셨습니다. 욥기 19:25-27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욥이 구속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한연약함 가운데 있는 욥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욥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나의 구속자로말합니다. “나는 아노라, 구속가 살아계신 것을. 나는 그를 볼 것이라.” 욥은 엄청난 비극과 고난 속에서도 그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하소연했지만,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불의는 마지막말이 아니라고 주저 없이 선포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위대한 것, 또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더 위대한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구속자로 말할 때, 그는 이사야 40-66장과 시편 전체, 그리고 신약에서 발견되는 고백의 예표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구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욥은 구속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기대는 구약 전체에 걸쳐 주어진 많은 예언들, 특히 시편과 이사야의 예언에 반영되어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욥기 4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소발의 변론 20:1-29 이것은 소발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다른 두 친구들과는 달리 세 번째 변론에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변론에서 세 친구 중 아무도 욥에게 소망을 약속하며 끝맺지 않습니다. 소발은 더 나아가서 욥이땅에서 가장 악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욥이 자신을 부끄럽게 했고,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발은 욥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악한 자들에 욥을 포함시키는 아주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그를비난합니다. 그의 이야기의 주제는 같습니다. 악한 자는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욥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욥을 가난한 자들을 멸하고 방치하는 악한 자에 포함시킵니다.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
Job Lesson Five
Job 15:1—18:21 Second Cycle of Arguments Between Job and His Friends (Part A) Second Cycle of Arguments (A) The attitude of Job’s three friends changes dramatically in this second cycle. They have lost their compassion and have absolutely no mercy … Continue reading
Posted in Uncategorized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