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December 2020

욥기 제 8과

욥의 마지막 변론 욥기 29:1—31:40  욥이 마지막 변론을 합니다. 그는 비극이 닥치기 몇 달 전, 그의 지난 세월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29:1—6) 욥은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던 때…” 그리고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 속을 걸어다니던 때”의 하나님의선하심에 대한 기억들로 시작합니다.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만 약속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누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29:7-25) 그는 이전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빈궁한 자들의 아버지이자, 약한 자들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는 “군대 중에 있는 왕처럼” 모든 지혜자들의 으뜸 되는 자리에 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난의 시간들이 그에게 닥쳤고, 그는 먼지나 재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욥에 대한 더 나은 그림을 보여줍니다. 욥기는 비유가 아닙니다. 욥은 허구로 지어낸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축복을 받았지만 깨어졌던 실제 인물입니다.  욥은 그의 남은 생애 동안 이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높은 지위를 누렸지만, 동시에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며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이전 삶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욥기 29장과 현재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욥기 30장사이의 간격은 너무 넓습니다.  욥기 30장은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욥기는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인 단순한 젊은 자들”이 욥을 어떻게함부로 대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의 버림받은 자들로부터 조롱과 업신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고, 욥에게 몰락을 가져다줄 어떤 재난이 닥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30:9) 욥은 이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연약했고, 그의 삶은 무너졌으며, 그는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욥은 30장에서 세 번 “그러나 이제는” (1, 9, 그리고 16절)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마지막인 16절에서, 욥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릅니다.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30:16) 욥은 그가 겪는 이 큰 고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보호하심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에(30:11) 하층민들이 그를 핍박하게 하게 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던지셨고, 티끌과 재같게 하셨습니다. (30:19) 욥이 “티끌과 재”라는 이 표현을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게 된 뒤에 다시 사용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신 뒤에 욥은 더 이상 자신의 비천함을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합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굴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굴욕은 나중에 그에게 진정한 겸손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도구가 되었음이 증명됩니다.  욥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31:1-40) 이것은 욥의 모든 변론 중에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서와 하나님 앞에서 그가 흠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눈과 약속합니다. 그는 탐욕으로 처녀에게 주목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31:1)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 장 전체에 걸쳐서 어떻게 욥이 “만일”이라는 말로 자신의 결백의 선언을 시작하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31:5, 7, 9, 13, 21, 24, 25, 26, 29, 31, 33, 38, 39) 욥은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면밀하게 살피시기를 초청합니다.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확신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잘 대했습니다. 욥이 자신의 종들, 가난한 자들, 고아, 과부, 심지어 원수들에게까지 어떻게 대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욥의 서명이 여기 있습니다! (31:35) 구약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욥과 에스겔 단 두 사람뿐입니다. 이것은 그의 표시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만일 죄가 있다면 그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했습니다.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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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제 7과

욥기 22:1—28:28  세 번째 변론 세 번째 변론 (욥기 22:1 – 28:28) 엘리바스의 변론 22:1-30  엘리바스에 관해 주목할 것들 엘리바스와 그의 친구들은 수년 동안 욥을 알았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그의 정직한 삶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욥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정통적인 율법 신학을 거부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제 욥을 악하다고 결론짓습니다. 엘리바스는 그것을 자신의 율법적인 시각 안에서 해석합니다. 욥이 악인들이 처하게 될 운명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욥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욥에게 유죄를 선포합니다. 엘리바스의 말들, 특히 5-9절은 책 전체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혹독하면서, 사실이 아닌 말을 욥에게 말합니다. 이 때까지 욥에 대해 가장 큰 긍휼을 보여주었던 엘리바스의 입에서 그 말들을 듣게 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냐?”고 욥을 비난합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밀한 죄까지도 보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갑지가 소망으로 돌이켜서 욥에게 만일 하나님께 돌아가서 그의 죄를 고백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의 신학은 율법주의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욥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는 세 친구들 중에서 욥에 대한 자비와 긍휼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엘리바스는 자신이 곧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나서 욥의 기도를 통해 회복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대답. 23:1-24:25 욥은 그가 처음 변론에서 했던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말합니다. 그는 엘리바스가 했던 대부분의 말을무시합니다.  23:3—5 욥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고자 하는 깊은갈망으로 외칩니다. 그것은 펠릭스 멘델스존이 그의 오라토리오 엘리야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그의 임재 안에) 나아가랴 (23: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난 속에서 욥에게 드러내신 하나님의 오묘한 것들의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욥은그 깊은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때에도 진리를 말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어떻게 발견할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분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변론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욥의 친구들의 거짓된 고발은 실제로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갈급함을 가지고 시도하도록 몰아가는 유익이 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공의나 자비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그분을 어떻게 발견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23:10 욥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욥이 어디 있는지 아셨고, 그를 보고 계셨습니다. 욥은 아주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신 것임을 이해하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소망을 표현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불 같은 시험 속에 그를 두시고 그를 연단시켜서 나오게 하실 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우리가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계속해서 고백할 수 있는 힘에 대한 비밀을 알려줍니다.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 23:14 “그런즉 내게 작성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이것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고 (시편 119:11) 말하는 시편기자의 고백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욥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내 상황을 변론하리라!” 24장은 악인들의 행위와 가난한 자들의 고난을 다룹니다. 또한 욥은 악인들의 최종 형벌에 대해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말함으로써 욥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악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24:12) 욥은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대한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는 심지어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욥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고통받는 의인을 위한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음으로써 엘리바스에 대한 대답을 끝맺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빌닷은 욥에 대해 조급하게 반응합니다. 25:1-6 그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실 만하며, 구더기 같고 벌레 같은 인간은 천하고 죄가 많다는것 말고는 거의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세 친구들 중 아무도 다시 말하지 않습니다. 소발은 욥을 꾸짖을 세 번째 기회를 가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빌닷이 자신의 변론을 말하는 데는 단 6절이면 되었습니다. 세 친구들의 우물은 말라버렸습니다.  욥이 자신의 변론을 요약하기 시작하다. 26:1-28:28 이제부터 여섯 장은 욥의 모든 변론의 절정을 이룹니다. 그는 친구들에 대한 그의 변론을 요약합니다.  욥은 먼저 빌닷에게 대응합니다. 그는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26:2) 그는 빌닷에게 “그런 고난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도왔는가?”와 같은 질문을 계속합니다.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빌닷이 아는 모든것을 알고 있으며, 빌닷이 고통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한 것 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7장을 시작하면서 욥은 세 친구 모두에게 이야기합니다.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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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Lesson Seven

Job 22:1—28:28  Third Cycle of Arguments   Third Cycle of Arguments (Job 22:1 – 28:28) Eliphaz speaks. 22:1—30 Things to notice about Eliphaz Eliphaz and his friends have known Job for many years and have witnessed his upright life, favored by God. But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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