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제 8과

욥의 마지막 변론

욥기 29:1—31:40 

욥이 마지막 변론을 합니다. 그는 비극이 닥치기 몇 달 전, 그의 지난 세월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 (29:1—6)

욥은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던 때…” 그리고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 속을 걸어다니던 때”의 하나님의선하심에 대한 기억들로 시작합니다.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만 약속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누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렸습니다.   

  •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29:7-25)

그는 이전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빈궁한 자들의 아버지이자, 약한 자들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는 “군대 중에 있는 왕처럼” 모든 지혜자들의 으뜸 되는 자리에 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난의 시간들이 그에게 닥쳤고, 그는 먼지나 재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욥에 대한 더 나은 그림을 보여줍니다. 욥기는 비유가 아닙니다. 욥은 허구로 지어낸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축복을 받았지만 깨어졌던 실제 인물입니다. 

욥은 그의 남은 생애 동안 이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높은 지위를 누렸지만, 동시에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며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이전 삶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욥기 29장과 현재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욥기 30장사이의 간격은 너무 넓습니다. 

욥기 30장은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욥기는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인 단순한 젊은 자들”이 욥을 어떻게함부로 대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의 버림받은 자들로부터 조롱과 업신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고, 욥에게 몰락을 가져다줄 어떤 재난이 닥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30:9) 욥은 이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연약했고, 그의 삶은 무너졌으며, 그는 혼돈 속에 있었습니다.  

욥은 30장에서 세 번 “그러나 이제는” (1, 9, 그리고 16절)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마지막인 16절에서, 욥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릅니다.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30:16)

욥은 그가 겪는 이 큰 고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보호하심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에(30:11) 하층민들이 그를 핍박하게 하게 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던지셨고, 티끌과 재같게 하셨습니다. (30:19) 욥이 “티끌과 재”라는 이 표현을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게 된 뒤에 다시 사용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신 뒤에 욥은 더 이상 자신의 비천함을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합니다.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굴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굴욕은 나중에 그에게 진정한 겸손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도구가 되었음이 증명됩니다. 

욥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31:1-40) 이것은 욥의 모든 변론 중에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서와 하나님 앞에서 그가 흠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1. 욥은 자신의 눈과 약속합니다. 그는 탐욕으로 처녀에게 주목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31:1)
  2.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 장 전체에 걸쳐서 어떻게 욥이 “만일”이라는 말로 자신의 결백의 선언을 시작하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31:5, 7, 9, 13, 21, 24, 25, 26, 29, 31, 33, 38, 39)
  3. 욥은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면밀하게 살피시기를 초청합니다.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확신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잘 대했습니다. 욥이 자신의 종들, 가난한 자들, 고아, 과부, 심지어 원수들에게까지 어떻게 대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4. 욥의 서명이 여기 있습니다! (31:35) 구약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욥과 에스겔 단 두 사람뿐입니다. 이것은 그의 표시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만일 죄가 있다면 그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했습니다. 
  5. 욥의 말이 그치니라.” (40절) 그는 자신에 대해 변호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선포했습니다. 

욥의 의로움은 당대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구원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임하는 진정한 의로움에 대해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욥이 이 변론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나를, 나의” 같은 대명사를 여러 번 사용했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그는 참된 신실함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에 따르면 그는그 당시에 살았던 가장 의로운세 사람 (다니엘, 노아와 함께)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사탄의 공격을 받는 시점까지 자신의 삶에 만족했습니다. 그의 고통스런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재앙이 나에게 임한 것일까? 나는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고, 그분을 부인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순종하는 삶을 살았는데 왜 나는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욥기에서 가장 큰 질문입니다: “왜 의인들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욥은 그의 인간적인 의로움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세 친구들도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욥에 대해 더 이상의 질문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욥이 독선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욥을 위해 그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욥에 대한 사탄의 공격 가운데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탄이 그를 공격하도록 허락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인 불안, 고통, 그리고큰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도 계속해서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세계에서 행하고 계신 위대한 일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시작부터,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안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함께 거하실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는 오늘도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사람을 찾고 계시며,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그분과 가까이 걸음으로써 그분의 진리 안에서 행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그분의 왕국을 세우고 확장하기 위해 쓰임 받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을 찾으셨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강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역대하 16:9a)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욥은 당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욥이 이해할 수 없었던, 욥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를 더 크고 강하게 함으로써, 더욱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욥기 성경공부의 서론에서 예레미야가 욥기의 저자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책을 썼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아마도 욥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많이욥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는 욥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일이 그가 예언을 했던 그의 민족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욥은 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민족은 깨어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깨어지도록 허락하신것을 이해했고, 하나님께서 욥을 깨어진 사람이 되도록 허락하신 것도 이해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욥이 알지못하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며 그분은 그 손으로 자기 백성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마치 욥을 그분의 손 안에 붙들고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욥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때로 죽기를 바라기까지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진흙으로 가득한 진흙 구덩이 속에 던져졌을 때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욥과는 달리, 예레미야는 죽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민족을 위해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비전을 그 진흙 구덩이 속에서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18:1-11)

태초에 주님께서는 욥을 의인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삶 속에서 행하셔야 할 더 깊은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욥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 가셨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더 아름다운 형상으로 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깨뜨리고 다시 빚는 것입니다. 욥의 깨어짐은 사탄의 역사가 아니었고, 세 친구들의 비난의 결과도 아니었으며, 당대의 하층민들로부터 받았던 조롱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고, 욥이 고난 가운데 숨겨진 보배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를 자신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계속해서 재형성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켜 주신 뒤에 어떻게 그가 살았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작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최고의 토기장이처럼 완벽하게 욥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을압니다. 우리는 이사야,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는 신약에 주목해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명을 변화시켜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그들을 사용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것들

1. 욥은 나의 “서명”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31:35) 그의 서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욥은 “만일”이라는 말을 31장 안에 열두 번도 더 사용했습니다. 시험당하기 전 그의 삶에 대해 어떻게묘사하시겠습니까?

2. 역사의 정의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거하실 수 있는 사람들을 창조해 가는 것” 이라는 데 동의하십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3.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깨어짐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때로는 깨뜨리셨다가 진흙을 다시 빚으시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This entry was posted in Uncategorized.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