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제6과

욥기 19:1—21:34 

욥이 고난 중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기 시작하다

(두 번째 변론 Part B)

 번째 변론 (A)

빌닷에 대한 욥의 대답 19:1-29

  1.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두어 놓고 형제들을 그로부터 멀리 떼어 놓으셨다는 사실에 슬퍼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19:8)
  • 욥은 모든 사람들과 멀어졌습니다. 
    • 그의 형제들과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서 멀어졌습니다.  
    •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잊었습니다. 
    • 그의 종들은 그를 낯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 그의 아내는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땅에서 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치셨기 때문에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 그러나 절망 속에서 욥은 그가 겪는 고난 속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욥은 구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위에 서실 것이라.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내가 그를 보리니  눈으로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이 초조하구나 (19:25-27) 이 구절은욥기에서 가장 중대한 시점입니다. 

게오르그 프레데릭 헨델은 이 몇 구절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구절들로 그의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The Messiah)”에서 찬양의 절정의 순간을 구성했습니다. 이것은 욥기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크게 기여한 또 다른 예입니다. 물론 욥은 자신의 고백이 갖는 위대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셨을 때, 구속자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불의가 최종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이사야와 바울이 그 뒤를 이어서 불의한 세상에 공의를가져오시는 구속자를 드러낼 것입니다. 

욥이 가장 큰 낙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진실입니다. 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실제로 구덩이 속에갇혀서 큰 고통과 낙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사도 바울에게도 이것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한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은 그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무대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9-10)

욥의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심령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본질적으로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성령의 권능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인간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내려놓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인 지식에 만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을 꺼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많은 친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욥은 환경이나 사탄의 공격에 의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시고, 욥이 거의 상상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그에게 특별한 생각과 비전을 허락하십니다. 욥은 나중에 그를고난 속에 숨겨진 보배를 발견하도록 이끌어 줄 보석들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의오묘한 것들”의 면모를 주고 계십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하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그들의 합리적인 신학보다 더 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제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1.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2. 그의 의롭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욥이 가장 어두움 가운데 있었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셨습니다. 욥기 19:25-27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욥이 구속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한연약함 가운데 있는 욥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욥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나의 구속자로말합니다. “나는 아노라, 구속가 살아계신 것을. 나는 그를  것이라.”

욥은 엄청난 비극과 고난 속에서도 그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하소연했지만,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불의는 마지막말이 아니라고 주저 없이 선포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위대한 것, 또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더 위대한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구속자로 말할 때, 그는 이사야 40-66장과 시편 전체, 그리고 신약에서 발견되는 고백의 예표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구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욥은 구속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기대는 구약 전체에 걸쳐 주어진 많은 예언들, 특히 시편과 이사야의 예언에 반영되어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욥기 4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소발의 변론 20:1-29

  1. 이것은 소발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다른 두 친구들과는 달리 세 번째 변론에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2. 두 번째 변론에서 세 친구 중 아무도 욥에게 소망을 약속하며 끝맺지 않습니다. 소발은 더 나아가서 욥이땅에서 가장 악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욥이 자신을 부끄럽게 했고,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주장했습니다. 
  3. 소발은 욥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악한 자들에 욥을 포함시키는 아주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그를비난합니다. 그의 이야기의 주제는 같습니다. 악한 자는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4. 욥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욥을 가난한 자들을 멸하고 방치하는 악한 자에 포함시킵니다. 
  5. 소발은 20:27에서,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그를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즉”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두 친구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 번째 변론을 하도록 허락지 않으신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6. 욥은 이미 소발의 첫 번째 변론 후에, 그의 얕은 신학을 폭로하면서, 그의 신학이 경직되고 피상적이며냉혹하고 자비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소발은 욥을 땅 위에서 사라져 다시는 보지 못할 악한 자들 중에 포함시킴으로써 그에게 대응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욥의 반론. 21:1-34

욥은 소발에게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세 친구들의 변론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악인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세 친구들은 악인은 저주를 받게 될 것이고 욥이 그들과 함께저주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시편 73에서 시편기자가 표현했던 것과 같은 문제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욥 21:7) 그는 시편 73편에서 의인들이 고난 받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인들이 부요함과 안위을 누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던 시편 기자의 외침을 반영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욥은 악인들은 모두 멸망 받고 잊혀질 것이라고 말한 소발의 말을반박합니다. 그에 반해 욥은 의인들이 고난 받는 동안 악인들은 계속해서 번영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들을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라고 외쳤으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노라.” (시편 73:16-17)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그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그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 질문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그들의 대답은 속임수로 가득 찬 헛된 말이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저 거짓 교리의 공허한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함으로써 그의 응답을 끝맺고 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어떤 위로도 주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볼 것들

1. 하나님께서 욥이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는 시간에 그에게 “영광의 비전”을 주셨다는 것을 발견하기시작하셨습니까? 욥이 구속된 삶의 영광을 상상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어떤 방법으로 욥이 발견한 이 “보석들” 이 그가 기다리는 더 큰 보배를 이해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까? 어떻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욥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습니까? 그것은 욥이 그의 의롭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난 받도록 허락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 지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습니까?

3. 시편 73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욥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악인들이 계속해서 번영하는 동안 의인들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시편 기자는 처음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습니다.” (시편 73:16-17) 시편 기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거기서 그는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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