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제4과

욥기 10:1—14:22

욥과 친구들의 첫 번째 변론 (Part B)

 번째 변론 (B)

하나님을 향한 욥의 간청(10:1—22)

빌닷에게 반응한 뒤 욥은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합니다. (10:1-22)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증오로 시작해서, “왜?”라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10:2)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 도전합니다. 그가하나님께 그를 놀라운 방법으로 창조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처음부터 자신을 저주하고 멸하려고 하셨던 것이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에 대해 거의 이단처럼 말할 뻔했습니다. (10:11-13) 그는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잠시나마 평안할 수 있도록 자신을 홀로 내버려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0:20-22)

소발이 이제 말하기 시작합니다. (11:1-20) 

소발에 관해 주목할 만한 내용들:

  1. 소발은 세 친구들 중에 가장 동정심이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고 욥에게 말했습니다. (11:6)
  2. 그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신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3. 그는 욥의 문제가 올바른 교리에 대한 무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의 오묘함” (11:7-9)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오묘함의 4가지 범주를 제시합니다.  
  4. 하늘보다 높은– 네가 무엇을 하겠느냐?
  5. 스올보다 깊은 – 네가 어찌 알겠느냐?
  6. 땅보다 긴
  7. 바다보다 넓은

그는 비꼬는 듯한 진술로 결론을 맺습니다. 야생 들나귀가 사람을 낳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 소발이 좋은 신학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가 욥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또한 분명합니다. 소발은 다른 두 친구들보다 더 자비와 긍휼이 부족했습니다. 소발은 자신이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의 네 가지 범주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소발이 말하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에베소서 3:14-19)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 높이 –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이 우리를 끌어올리십니다. 
  • 깊이 – 하나님의 사랑은 지옥보다 깊습니다. 그분은 사탄의 모든 계획을 멸하시고, 가장 깊은 어둠의 시간 동안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 길이 –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며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항상 우리를 그분의 손으로 붙잡고 계십니다.  
  • 넓이 –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온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의인이 받는 고난을 이해하기 위해 집단적인 공동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론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고난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중에 높은 사랑, 즉 우리를 구속하시는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깊은 사랑, 즉 절망의 깊은 어둠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고 긴 사랑을 알게되고,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중에 행하시는 더 큰 일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알게 될 것이며, 고난을 통해 우리를 확장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고통 가운데서 사역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소발은 회개하라고 욥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소망을 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삶이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욥이 소망 가운데 다시 걷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Job responds. 12:1—14:22

 반응. 12:1-14:22

욥은 소발에게만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 친구들 모두에게 함께 반응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론입니다. 첫째, 그는 친구들에게 응답했습니다. (12:2-13:16) 그리고 나서 13:17-14:22절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합니다. 욥의 이야기의 움직임이 어떻게 그의 친구들에서 점점 멀어져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지에 주목하십시오. 그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싶다고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기 원했습니다. 

욥은 아주 비꼬는 말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그런데 그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의 악한 행위 또한 저주받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친구들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매우 단순한 이해만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12:13-25) 욥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뿐 아니라 멸하시고 헐어내실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는 구원을 가져오시며, 불의를 바로 잡으십니다. 

13:1-28은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들 중 하나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그들이 자신에게 말한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는 “너희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에대한 그의 계획을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친구들이 듣기를 원합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놓고 하나님과 변론하기 원합니다. 

13:6 –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 그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왜곡해서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해이렇게 말합니다. 9절에서 그는 친구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세 친구들의 결론은 같았지만, 그들의 지식의 원천은 제각각 달랐습니다. 엘리바스는 그의 지식을 초자연적으로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빌닷은 전에 그가 들었던 교훈으로부터 이해를 얻었다고 합니다. 소발은 자기 자신의신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들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3:15절은 13장의 핵심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 절은 성경 번역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구절입니다. 어떤번역본은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고 번역합니다. (개역개정판) 대부분의 다른 번역은“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에게 소망을 두노라. (Though He slay me, yet I will hope in Him.)”고 번역합니다. 처음 번역본 (개역개정판)의 문제는 욥이 자기에게 소망이 없다고 말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16절과 18절에서 욥은 소망을 공언합니다. 16절에서 욥은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와 변론한 것으로 인해 나를 죽이실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임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에게 소망을 두노라. (Though He slay me, yet I will hope in Him.)” (ESV및 기타 번역본)

13:20-24 – 욥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자신을 향한 그분의 저주를제하여 주시기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그가 응답할 수 있기를 구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15절에서 그는 소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아니라, 비록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14:13 욥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한국어 번역) “스올은 지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스올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 쉬는 곳입니다. 

14:14-17 욥은 큰 질문을 하고 나서 하나님에 대한 큰 소망을 표현합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욥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친밀감을 구하고 있습니다. 14:15절은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감찰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의 눈으로, 아버지로서 그의 걸음을 지켜 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4:18-22 그렇지만 그리고 나서 욥은 다시 한번 절망에 빠집니다. 이것은 두 번째 변론으로 이어집니다. 

생각해 볼 것들

1. 욥이 하나님께 불평한 것이 죄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시편을 읽으면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어떻게불평하고 원망했는지를 관찰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2. 소발이 말한 “하나님의 오묘함” 의 네 가지 범주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의 네 가지 범주에 대해 묘사한 것이 고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3. 무엇이 욥으로 하여금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해 주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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