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1-9:35
욥과 친구들의 첫 번째 변론 (Part A)
첫 번째 변론 (A)
고난을 대하는 욥의 반응에 놀란 세 친구들은 말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욥을 설득하려 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려 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그들의 변론은 욥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4:1-31:40)
때로, 욥의 친구들은 욥을 격려하고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를 비난했습니다. 처음에 그들모두는 소망을 주지만, 결국에 가서는 욥을 비난하고 공격하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그들이 욥의 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던 좋은 친구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해결책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세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공부하는 동안 각각의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욥이 거기 있었다면 어떻게 그를 위로할 것인지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엘리바스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가장 큰 어른이었습니다. 42장에서 친구들에게 말씀하실때, 하나님은 엘리바스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들 중 리더였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엘리바스에 관해 주목할 내용들
- 엘리바스는 욥에 대한 온화한 책망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마음이 그에게 확신을 줄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욥에게 사람은 고생을 위해 태어났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조언자처럼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욥을 격려하는 중에도 하나님에 대한신뢰가 부족하다고 욥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는 죄 없이 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4:7-8)을 욥에게 떠올리게 하면서 부드럽게 그를 꾸짖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이상 조언자가 아니었으며, 현명한 신학자처럼 말하기로 결심합니다. 엘리바스는 아주 정통적인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물론 그가 따르는 정통성은 율법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을 들을 때 욥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철저한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자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신실하게 섬겨 왔던 하나님이 이제 그에게서 돌아섰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4: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 그는 잠들 즈음에 깊은 환상이 임했다고 말했습니다. 욥기 4:15-16절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의 입김이 나의 얼굴을 스치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네.” (북한성경 번역) 그리고 나서 그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그는 하나님께서 욥에 대한 비밀한 것을 속삭이며 말씀하실 정도로 자신이중요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 5장부터 엘리바스는 욥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욥에 대해 무감각해져버렸습니다. 동시에 그는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5:8)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정통 율법 신학자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욥에게 정통적인 교리, 즉 율법의 정통적인 가르침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받는 유익에 대해 욥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요약: 욥이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어떤 재앙도 그에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재앙이 임했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을 찾고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징계하심 뒤에 많은 복이 뒤따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5:27절에서 그는 세 친구 모두를 대표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엘리바스의 신학은 아주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욥이 경건한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욥은 (6:1) 자신의 생명이 숨결에 지나지 않으며, 그 영의 괴로움 속에서 말하고, 영혼의 괴로움 속에서불평할 것이라고 반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솔하게 말했으며, 자신의 말이 경건하지 못했을 수 있음을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악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께 자신을 멸하시고 끊어 달라고 구했고, 왜 이처럼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가르쳐 달라고 요청할 뿐이었습니다. 욥은 세 친구들 모두가 이 참혹한 일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넌지시 말합니다. 그들의 정돈된 정통의 틀로는 설명할 수없었기 때문입니다. (6:21)
욥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이었지만 동시에 반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7:11절에서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 (7:20)로 부릅니다. 욥은시편 8편에 기록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라는 말씀을 비틀어서 말합니다. 시편 8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을 그처럼 높이시는 것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시편을 잘못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왜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찾아오셔서 매 순간 그를 시험하시는지 묻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왜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시는지 질문함으로써 그의 반론을 끝맺습니다.
빌닷이 (8:1)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빌닷에 관해 주목할 내용들
- 빌닷은, 고난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며, 욥의 자녀들의 죽음은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 욥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죄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해야 할 일은 회개 뿐이며, 그러면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8:6)고 말합니다. 8:4-6절에서의 빌닷의 말들은 비꼬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빌닷은 욥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둔감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직설적이었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다는 엘리바스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고 나서 그는 욥에게청결하고 정직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그렇지만 빌닷은 소망으로 그의 변론을 마무리합니다.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1절)
- 욥기에 나오는 빌닷의 세 번의 변론들은 그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피상적인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그는 욥을 돕고자 했지만, 욥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판단합니다.
욥의 반론 (9:1-35)
욥은 여전히 강한 질문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무력감에 휩싸여 있고, 갇혀 있다고 느낍니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멸하기 원하신다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빌닷에게 대답합니다. (9:1-35) 빌닷을 향한 그의 첫마디는 냉소적인 말로 가득 찼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9:2-3) 그는 빌닷에게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9:11)라고 말하면서그의 극심한 좌절감을 드러냅니다. 빌닷을 향한 욥의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앞에 의로우랴?”
그는 빌닷이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하기 위해 여기 계신 것이 아니라 고발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가 옳았고 하나님이 틀렸을지라도, 하나님은 인간이 감히 대답할 수 없을 만큼 강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지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습니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9:15) 그는 이렇게 말하기까지했습니다.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9:16)
욥의 고통은 자신이 의롭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참소하고 계시다고 믿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이치를 따지며 설득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를 수 없었고, 그의 대답을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욥의 가장 큰 갈망은 그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 (mediator)가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arbiter/mediator)도 없구나.” (9:32-33)
히브리어 단어 “중재자” (mediator [mokiakh])는 재판관을 의미하지 않으며, 두 당사자 모두의 친구로서 그 양쪽 모두에게 손을 얹어서 화해하게 함으로써 분쟁을 해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국어로는 판결자 대신에 중재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게 여겨집니다. [이것은 예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욥이 중재자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우리는 후에 그가 이 주제를 발전시키고, 실제로 중재자가계심을 믿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볼 것들
1. 엘리바스를 어떻게 묘사하시겠습니까? 친구입니까? 조언자입니까? 신학자입니까?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반응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2. 빌닷의 변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욥과 관련된 그의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빌닷에대한 욥의 반응에서 그와 동일시할 수 있습니까?
3. 자신의 고난이나 세계의 고난에 대해 욥처럼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북한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고난이나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극심한 핍박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은 왜 의인들을 위해 개입하지 않으십니까?”라고 질문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4. 오늘날 세상의 수많은 의인들이 받는 극심한 고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욥이 자신의 고난과 관련하여 “중재자”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