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장

 

이 장은 3장과 구분되어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야고보는 교회 구성원 간의 다툼과 싸움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지혜로운 사람, 즉 화평케 하는자의 필요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질문을 합칠 수 있습니다.

4:1 –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3:13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이들 디아스포라 교회들에는 그리스도인들 간에 다툼과 싸움을 멈추게 해 줄 지혜의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야고보서 4:1-5

야고보가 여기 4장에서 언급한 공동체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있었고, 야고보는 심지어 그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다고까지 언급했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교회 안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합니까? 당시에 유대인들의 열심당원 운동 (Jewish Zealot movement)이 상당히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투쟁 가운데 죽음으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그들의 다툼이 때로 폭력적이 되어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구절에서 야고보는 어떻게 우리의 혀로 사람들을 “살인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실제적인 의미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야고보가 갈등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이기심과 신랄함에 아주 화가 나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부터 나는것이 아니냐”  (4:1) 그 사람들은 물질에 대한 정욕 가운데 있었고 그들의 경건치 못한 욕망을 만족시킬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 권력과 통제에 대한 욕망 등 정욕의 문제를 회개하고 해결하기보다는 그들끼리 싸우면서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좌절된 욕망은 공동체 안에격렬한 투쟁을 낳았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그들이 실제로 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야고보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기를 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 1:5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4장의 문맥을 볼 때 그 곳의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세속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지혜를 위해 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구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4:3 –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만일 그들이 물질적인 것을 구하고 있었다면, 자신들의 쾌락을 채우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받지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지혜를 구했어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도자로서의 인정을 구하거나, 교회에서 특별한 위치에 오르기 위해 구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도 우리의마음을 살피시며 우리의 동기를 아십니다.

야고보는 우리 스스로에게 핵심 질문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려고 합니까? 아니면 세상과 친구가 되겠습니까? 야고보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4:5) 이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질투를 지키시고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야고보는 4:4절의 말씀으로 편지의 원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편지 전체에 걸쳐 야고보는 그들을 “내 형제” 또는 “내 사랑하는 자들”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간음하는 자들과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그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 사용된 명사의 형태는 여성형입니다. 그는 호세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말했던 것과 비슷하게편지의 수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신부가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을사랑했던 것입니가? 야고보는 이것을 영적인 간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그들에게 그처럼 충격적으로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야고보서의 이전 장들을 되돌아보면 그 이유들을 알 수 있습니다.

 

  • 2:1-13 – 그들은 서로를 향한 편견으로 세상의 본을 따라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 3:1-12 – 그들은 서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 3:13-18 – 그들은 극심한 질투와 이기적인 야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 4:1-3 – 그들은 자신들만의 파괴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초래한 위기는 그들을 하나님과 원수 되게 했습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원수가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서 4:6-10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 (Reinhold Niebuhr)는 죄의 뿌리는 교만이며, 가장 큰 교만은 영적인 교만이라고가르쳤습니다. 즉,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4:6절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교만과 이기적인 야망은 야고보의 편지를 받는 교회들을 특징짓는 표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싸워야 하는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야고보서의 이 구절은 나에게 있어서 선교사로서 나의 사역의 하나의 전환점에 있던 때에 아주 의미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베푸신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나눕니다.

 

개인적인 경험

1970년대 초, 아내와 나는 우리가 사역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본질은 없이 형태만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뭔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안식년을 보냈고, 나는 컬럼비아 신학대학원(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에모리 대학교 (Emory University), 애틀랜타 대학교 (Atlanta University)의 마틴 루터 킹 센터 (Martin Luther King Center)에서 공동 과정을 밟으며, 애틀랜타 신학컨소시엄 (Atlanta Theological Consortium)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지만 나는 그처럼 훌륭한 학문적인 공동체 안에서도 내가 찾던 것을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에모리 대학교의 수학과 대학원생들의 작은 기도 그룹에 참여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나는 이미 성령님에 통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 그들은 모두 우리와 동의하면서, 우리에게“다른 세례”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세례가 아니라, 사도행전 1:5절에서 너희는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주시는 세례”였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회심할 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세례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십니다. (사도행전1:8)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권능으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나는 갑자기 주님께서야고보서 4장으로 나를 이끄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NASB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품은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4:4, 6, 8-10)

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쁨이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기쁨을 가눌수 없었지만, 그것은 내가 교만함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느낀 뒤였습니다. 나는 깊은 교만의 사람이었으며 겸손함이 부족했습니다. 나는 야고보의 편지를 처음으로 읽었던 그리스도인들과 같았습니다. 성령의은사들 안에서 사역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권능 있는 사역과 넘치는 기쁨을 구했습니다. 나는 스스로를 영적인 지도자로 여겼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고있었던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거저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대해 아내와 나 둘 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긴 나날들, 깊은 회개의 시간들은 부부로서 우리에게 매우 소중했습니다. 날마다 세상과 나의 거대한 자기 중심적인 계획들에 대해서 죽고, 나의 교만함을 회개하면서 예수님께서주시는 선물만이 아닌 예수님 그분만을 바라고, 성령님께서는 오직 빈 그릇만 채우신다는 것을 깨닫는것,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하나님과 친구가 되고 그분의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구하고 기도한 후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두 사람 모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주셨습니다. 내게 찾아온 가장 큰 표적은 나 자신의 연약함과 공허함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나의 인간적인 힘을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이나 내가 사역했던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연약함 가운데, 우리의 연약함을 완전하게 하시는 그분의 강함으로 나를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조건 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채우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내가 깨어지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내게 밀려왔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교만과 싸웠고 나의 교만이 주님께 가장 큰 슬픔을 안겨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더 이상 야고보서를 학문적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내가 바라는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 나 자신을 완전히 드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나를 다스리실 수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만일 우리가 교만을 떠나서 겸손함으로 돌이켜 치유를 받는다면, 주님께서는 다시 우리를악한 길에서 떠나 돌아온 그분의 아들과 딸로 맞아 주시고, 하나님은 물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도록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7

야고보는 겸손이 사탄을 대적할 수 있는 우리의 가장 강한 무기임을 떠올려주는 것으로 이 장의 결론을맺습니다. 겸손이 공동체의 표지가 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서로를 판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제어될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악한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겸손은 또한 우리 자신을 의존하고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우리의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뻔뻔스러운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삶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과 오만함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제한 체로 인간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내일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14)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자신에 대해 죽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생각해볼 질문들:

  1. 무언가를 위해 기도했는데 응답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이 잘못된 이유로 기도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기도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1. 당신의 삶에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1. 교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겸손은 어떻습니까? 삶에서 드러나는 교만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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