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야고보서 1:1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나 그의 위치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사도라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바울처럼 그는 사도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어떤 성경 번역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로, 종 (bondservant)이라는 단어를사용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나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우리는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돌보시는 스스로 있는 위대하신분 안에 속해 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서 있으며, 조건 없이 그분께 완전히 순복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반응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기본적인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역에 있어서 우리의 정체성은 주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그분과 친밀함을 누리는 자녀이자 동시에 세상에서 그분을 증거하는 종이 되게 하십니다.

흩어진 열두 지파는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도행전 1:8절과 사도행전 8:1절을 읽어 보십시오.

사도행전 1: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계획은 그의 제자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1 –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행전 8:4 –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흩어진 사람들은 박해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해의 한복판에서 그의 백성들을 계속해서 축복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장시키는 데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받는 국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2-8, 1:12

야고보는 1장에서 “시련” 또는 “시험”에 대해 두 가지 방법으로 말합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우리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가 허락하신 것입니다. 2. 사탄이 주는 시련은 유혹을 통해 죄를 짓게 하는것이며, 그의 목적은 우리를 죽일 수 없다면 최소한 영적으로 우리를 죽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12절에서 이러한 두 종류의 시련에 대해 말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여기에는 하나님의 시험과 함께 사탄의 유혹 또한 포함됩니다. 이는 시련을 견디어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시편 23편의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시험하시는때조차도 그분 안에서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시험이 인내를 낳고, 그로 인해 성숙하고 온전케 되어 아무 것에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것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험이 우리를 어떻게 돕는지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두 종류의 지혜가 있는데, 위로부터 온 하나님의 지혜와 아래에서 나온 지혜, 즉 위의 ,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입니다. (3:14-15) 우리는 주님께서 주실 것을 기대하며, 지혜를 얻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련이 찾아올 때, 주님의 시험과 사탄의 유혹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사탄의 유혹은 그가 우리 마음에심어 놓은 잘못되고 죄악 된 욕망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십니다. (야고보서 1:21) 그러나 사탄은 악한 생각을 심습니다. 이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해야 합니다. 오늘 내 마음에 심겨지도록 허락한 것은 무엇인가? 기억하십시오. 씨가 심겨지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아니면 죽음과 파멸로이끌 죄악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야고보서 1:9-11

이 세 절의 말씀은 시련과 유혹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읽혀집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은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시련 또는 시험과 사탄으로부터 온 유혹 모두와 연관된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양쪽 문제들 모두를 다루기 위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보여줍니다. 디아스포라 교회안에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격차에 대한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오늘날까지도남아 있습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1:9-10) “낮은” 형제들은 기독교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들의 존엄성이 회복되도록 하기위해 그들의 필요는 자랑하거나 또는 “높아져야” 합니다. 부한 형제는 겸손을 배우기 위해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은 기독교 공동체의 핵심적인 미덕이며, 겸손을 배우기 위해 우리에게는 “낮아지거나” “겸손하게 되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코이노니아 (koinonia), 즉 참된 공동체의 기능 중 하나는 눈에 띄지 않거나 잊혀지고 무시된, 어려운 환경을 단순히 버텨내고 있는 사회 변두리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공동체는 부자들에게 그들의 부가 영원히 누리도록 약속된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에 세상을 축복하도록 주어지는 선물로 보아야 한다는 이해를 주고 권면하면서그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한자와 가난한 자 양쪽 모두를 “시험하셔서” 부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갖도록 돕고, 전세계적인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이, 부한 자들은 이기적이 되게 하고, 가난한 자들은 분노하며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도록 만들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13-15

우리는 하나님의 시련과 시험, 그리고 사탄의 유혹들에 대해 주의 깊게 구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시련은 유혹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깊게 하고 더 큰 기쁨으로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강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 삶에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유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며 우리 생각에 심겨집니다. 사탄은 모든 유혹의 근원이지만, 그의 거짓말과 속임을 받아들여 그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하와가 그 남편과 함께 사탄이 거짓말과 말씀에 대한 오해를 그 마음에 심도록 허락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가예수님의 피와 그분의 말씀, 그리고 성령의 권능으로 유혹을 이길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1:12)

 

야고보서 1:16-20

돈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가지게 되는 모든 좋은 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주는중요한 열쇠는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의 원천을 아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피조물 중에 우리로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17-18)

하나님만이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의 근원이십니다. 부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른 많은선물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크고 중요한 선물은 성령 안에서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의편지에 성령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성령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결론짓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어서 그분을 우리의 주와 구원자로 영접하도록 하시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공동체의 창조자이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1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몸이 되었고

야고보가 편지를 보낸 교회들에는 부한 자들과 가난한 자 사이의 불화, 비판적이고 판단하는 말들이 오가는 무질서와 불일치가 있었습니다. 무질서의 반대는 질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평강, 즉 샬롬입니다. 평강은 성령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가며 행할 때,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존재하게 될 조화로움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편지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그것을 부인하지 않았고, 단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져다줄 성품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대천덕 신부님 (Father Archer Torrey, R. A. Torrey III) 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품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중요하지만 우리 삶에 항상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지만, 특별한 시간에 주어집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성품적” 은사들 (성령의 열매들)은 나무 열매처럼 영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성령의 “성품적 은사들”을 그의 편지에서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1:21-27

감사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유혹, 즉 경솔하게, 공동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유혹들을 이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주된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마음에 심어진 말씀 온유함으로 받으라 (1:21)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심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경솔하게 말을 옮기는 것, 험담, 부정적인 말 등을 우리 삶의주요한 죄악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하는 회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 (갈라디아서5:22-23) 그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기 위해 우리의 의지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탐심을 십자가에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온유하다는 말의 헬라어는 “관대함”으로도 번역됩니다.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완전해 내려놓을 때, 우리는 또한 우리의 성격 또한 내려놓게 됩니다. 온유하고 관대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나쁜 성격”에 대해 이해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쁜 성격은 우리 삶에 있는 죄악의 징조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을 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재형성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헌신하게 됩니다.

온유함으로 “심어진 말씀”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이사야 50:4-5절은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야기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제자들) 같이알아듣게 하시도다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우리가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며,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기를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 한 구절 앞에서 잠시 멈추고, 각 단어에 집중하며, 하나님께서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러 나가는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후에 그 비유의 의미를설명해 달라고 예수님께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8:11)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는 씨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우리 안에 심으실 때, 각각의씨들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서, 지혜를 만들어냅니다. 정욕적이고 마귀적이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를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내면에 심겨지게 되면, 우리는 말씀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참된 종교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1:27)

 

생각해 질문들

  1. 야고보서 1장에서 다음 구절들을 암송해 보십시오. 1:17; 1:21, 그리고 1:27절입니다. 만일 이 말씀들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는 “심어진 말씀”을 받기 위해 계속해서 마음을 열게 되고, 참된 종교를 실천할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1. 성령께서는 요즘 당신의 삶에 어떻게 일하고 계십니까? 초자연적인 방법입니까? 성품을 세워가고 있습니까?

 

  1. 우리 삶에 직면했던 시련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시련들을 통해 어떻게 우리를자라게 하셨습니까? 유혹에 빠졌다가 나중에 회개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지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까?

 

  1.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씀 묵상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켰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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