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공부를 위한 준비

야고보서

성경공부를 위한 준비

 

들어가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주변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독특한 “편지형태의 설교”를 썼습니다. 그의 편지는 가장 초기에 쓰여진 신약 책들 중 하나이며,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 12-15년쯤 뒤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있는지를 흩어진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구원이 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만일 우리가 우리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0:9) 히브리서는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깊은 임재 안으로 이끌어서, 어떻게 우리가 죄를 덮어주시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받게 되는지를보여줍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하는 믿음의 또 다른 요소를 지적합니다. 그는 어떻게 믿음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로 인정하신 남자와 여자들의 명단”을 히브리서에 포함시킵니다. (히브리서 11장)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동을 통해 그분께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본토와 그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주님을 따라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동안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완전한 순종 가운데 주님을 따르기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상할 수 없는 핍박 가운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순종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야고보서와 함께 히브리서를 공부해야만 합니다. 히브리서는구원의 깊이와 부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누리게 되는 믿음의 권능을 드러내어 줍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남은 삶 동안 그분을 순종하며 따르기로 결정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사람의 일상 생활과 관계 안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믿음은 사회와 나라의 안전과 번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야고보서의 배경

야고보서의 문학 장르는 무엇인가?

야고보서 1:1절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전하는 편지임을 명확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특정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밖에 사는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들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설교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편지 형태의 설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누가 썼는가?

저자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종) 야고보”로 특정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1) 신약 성경 안에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이편지를 썼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저자라는 증거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1세기초대 교회와 19세기까지의 거의 모든 학자들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이 편지를 썼다고 보고 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일부 학자들이 이 편지가 야고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무명의 사람에 의해 쓰였다는 학문적인 증거가 증명되었다”고 말했습니다. 1,900년 동안 교회가 인정했던 증거들을 취하는 것이현명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동안, 야고보는 그의 형을 구세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뒤, 야고보는 주님을 따르기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고, (사도행전 21:17-18) A.D. 48-49년에 열렸던 예루살렘 공회의 중요한 지도자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그 공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유대인 아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들에게 유대 종교의 예식과 관습을 따르도록 의무화해야 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이었습니다. 베드로, 바울, 그리고 바나바는 그 공회에 참석했습니다.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의 증거를 간증했습니다. 베드로, 바울, 바나바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어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주라고 고백하며, 평생토록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결론 지은 사람이 바로 야고보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우상 숭배와 성적인 부도덕함, 그리고 짐승의 피를 먹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공회는 야고보의 말에만장일치로 동의했고, 이 기쁜 소식을 모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로 보냈습니다.

야고보서를 읽을 때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가 하나님 안에서우리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의 필요성을 이 편지에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야고보는 베드로나 바울처럼, 한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는 것뿐임을 믿었습니다. 그는 단지 우리의 선행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동반해야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처음의 열두 사도 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바울이 갈라디아서 1:19절에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 그는 사도였습니다. 야고보는 자신을 사도로 칭하지는 않았고, 하나님과 주 예수의 종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편지의 기록 시기는 언제인가?

만일 저자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면, 그 시기는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던 A.D. 62년 이전이어야 합니다. 가장 유력한 기록시기는 A.D. 40년대 중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바울이 우리의 행위가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이 임한다고 가르치던 때와 같은 시기입니다. 야고보는 바울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는 그저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편지의 원독자들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 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도시의 유대교 회당에서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 2:19) 그들은 구약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들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많은 종족 그룹들처럼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가 아주 초기에 쓰였던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박해로 인해 흩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사도행전 11:19)

그들 중 대부분은 압제 가운데 있었고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부유했고, 그래서 가난한 자들과 부한 자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야고보서 4:13절은 그들 중에 있었던 여러도시를 다니는 무역상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부유한 계층에는 기독교인들과 부유한 유대인 지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을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두 그룹 모두 그들 중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흩어진 사람들은 우리가 “세속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러 나라들 가운데 흩어져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욱 밝히 드러나게 했습니다.

 

야고보서를 목적은 무엇인가?

주된 강조점은 야고보가 단언했던 믿음의 완성을 위한 행위의 필요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점을 야고보서 2:17절에서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것이라.” 그리고 나서 그는 “…  나는 행함으로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서 2:18)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그의 신학을 아주 실용적으로 세워 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신학의 의미 자체는 하나님을 공부하며, 하나님 알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신학은 조직적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 주님에 대한 엄청난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고 성령님에 대해 풍부한 이해를 준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제적으로 작용하게 되는지 알게 해 주었기에 그가 실천신학을 제시해 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가 쓴 편지를 받게 될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격려함과 동시에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의 관심은 그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그분의 목적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일상 생활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실천하고 있음을드러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야고보는 이 편지의 독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 믿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목적은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삶 안에 이루어 놓은 놀랍고 급진적인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는것이었습니다.

이 편지 전체에 걸쳐 펼쳐지는 한 가지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온 마음을 다하는 헌신의 필요성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과 사귀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4:8) 그는 그리스도인은 한 마음을 품어야 하며, 두 마음을 품으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는없다고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야고보서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에게 문제가 되었다면, 그는 그의 서신에서 기록을 했거나, 예루살렘 공회에서 그것에 관해 말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 그러나 16세기 (야고보가 이 편지를 쓴 지 1,500년 뒤, 그리고 신약의 정경에 수록되기로 공식적으로 결정된 지 800년 뒤) 종교개혁의 지도자 마틴 루터 (Martin Luther)에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 (epistle of straw)!”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야고보서가 많은 좋은 가르침들을 가지고 있지만 신약성경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 루터는 이 서신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가 율법에 관한 야고보의 가르침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야고보가 구약의 모세 율법이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스신 사랑의 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바울 또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갈라디아서 5:6)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야고보에 분명히 동의했고, 마틴 루터도 만일 그가 야고보의 말을 이해했다면 거기에 동의했을것입니다.

 

야고보서를 공부하기 전에

두 개의 시편이 야고보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시편 15편과 16편을 성경공부를 시작하기전에 읽기 원합니다.

시편 16편은 오래도록 내가 가장 좋아해 왔던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감에 대해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8절과 9절에서 친밀감의 비밀을 드러내어 줍니다. “내가 여호와를항상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그는 주님의 임재 안에 충만한 기쁨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이 시편을 끝맺고 있습니다.

시편 16편은 모든 사람이 묵상해야 하는 시편이며, 이 시편을 암송한다면 더욱 특별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시편 15편과 16편의 연관성을 보기 원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다윗왕이 두 시편 모두를 썼고, 그래서 두 시편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시편 15편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 대답으로 다윗은 정직하게 행하며, 진리를 말하고, 바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말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과 친밀함 가운데 행할 때, 그 사람은 이웃의 허물을 들추거나 비방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뇌물을 받거나 불의한 행동을 하면서, 여전히 그 앞에 계신 주님을 바라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의 주와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따르며 평생토록 그에게 순종할 것을 헌신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편 15편과 야고보서에서 우리의믿음이 우리를 경건치 않은 세상 한 복판에서 경건한 삶으로 살아가도록 이끌기 위해 삶의 방식에 대한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만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14-16절에서 이것에 대해 가장 잘 말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야고보서를 여러 번 읽으면서, 이 서신서를 읽는 동안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개인을 향해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이 편지를 읽으면서 관찰한 것들의 리스트를 만드십시오. 기억할 것은, 관찰은 의견이나 성경 내용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관찰을위한 좋은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관찰은 책의 기본적인 흐름을이해하고, 저자가 주되게 강조하는 것들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시편 15편과 16편을 읽으십시오. 이 두 시편의 몇몇 구절들을 묵상하는 시간을잠시 가지십시오. 그리고 나면 우리는 야고보서 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충만하게 되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새길 수 있도록 야고보서 안에서암송하기 원하는 핵심 구절들을 찾으십시오.

참고사항: 다른 언급이 없다면 인용된 모든 영어 성경구절들은 New King James Version (NKJV)에서 인용했습니다.

 

This entry was posted in Uncategorized.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