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brews한글로 제14과

제14과

 

히브리서 12:1-24 믿음의 삶

히브리서 12:1-3 – 예수, 완전한 믿음의

장면은 대형경기장에서 펼쳐집니다. 큰 무리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들은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경주를 마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의 이름은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없이는 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11:39-40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경주는 릴레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하게 되는 그 상은 모든 세대의 모든 성도들이 나누어집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2:10)

벗어 버리십시오

우리는 모든 죄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달려갑니다. (우리는 감정적이나 지적인 짐들을 포함한 모든짐을 진 채로 달릴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 우리를 지치게 하는 짐과 우리를 얽매는 죄 – 는 우리가나아가는 경주와 믿음으로 사는 삶을 이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인내로써 경주하십시오 . . . 모든 경주자들은 인내 (지구력)의 필요성과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말씀과 기도로, 그리고 순종을 통해 성령 안에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봄으로써 스스로를단련시켜야만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원하시는 속도에 맞춰 우리를 목적지에 다다르는 지속적인 경주자가 되도록 이끄시는 우리 경주의 “페이스메이커”이십니다. 앞서 달리신 경주자로서 예수님의 힘은 기쁨이었습니다!

  • 아버지께서 그 앞에 두신 기쁨
  • 기쁨으로 그의 뜻을 행함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것임을 아는 기쁨
  • 고통의 한복판에서조차 깨지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교통하심의 기쁨
  •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악에 대한 그분의 최종 승리를 기대하고, 모든 백성에게 구속과구원을 가져다주는 기쁨!

그 기쁨으로 인해, 예수님은 부끄러움과 고통, 그리고 십자가를 참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을 말합니다. A. W. 토저 (A. W. Tozer) 는 이것이 믿음의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다른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비교할 때 희미해집니다. 우리는 “구름 같이 둘러싼증인들”을 충실히 따라야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은베드라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물위를 걷기 시작했을 때에 대해 말해 줍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했던 시선을 놓치는 순간 – 물 위를 걷는다는 위험과 불가능, 그리고 부자연스러움에 시선을 두기 시작한 순간– 그는 물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킬 때,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찾게 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창조자이시며 근원이시며,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우리가 경주를 완주하고 약속을 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4-17 믿음의 안에서 징계의 목적

징계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징계가 필요했습니다.

  1. 그들은 아직 피 흘리기까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았지만, 아마도 아직 순교를 경험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아직 죄에 대해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2. 그들은 잠언의 훈계 (3:11)를 잊었습니다. 지혜는 고통과 고난이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 학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즉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라는 표시였습니다. (히브리서 12:7-8)

하나님의 징계의 네 가지 결과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
  2.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12:7)
  3.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특권 (12:10)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가 그의 징계에 순복할 때 우리안에 형성됩니다.
  4. 징계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12:11)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라디아서 5:22-23)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가지 잘못된 반응:

  1. 하나님의 징계를 진지하게 받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것 (12:5)
  2.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 (12:5) 포기하며 절망에 빠지는 것
  3. 분노와 원망이 우리 안에 “쓴 뿌리”가 되어 다른 사람을 더럽히는 완고함과 자기 중심적인 마음이 (12:15) 일어나도록 내어주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는 현명한 아들과 딸로서 반응하며,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형상으로 재형성해 주시도록 내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에 대한 다섯 가지 올바른 반응:

  1. 하나님의 징계를 하나님의 말씀의 맥락 안에 두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자신을 살피십시오. (히브리서 12:5 – “그의 권면의 말씀을 잊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기준입니다. 특별히 시편과 잠언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거짓된 자아의 껍질을 깨뜨리는 망치와같으며, 우리의 삶에서 나온 쭉정이를 태워 없애는 불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 뒤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풍성하게 먹이십니다. (예레미야 23:28-29)
  2. 하나님의 징계에 순복하여 살아 가십시오. (12:9-10)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의사랑하는 아들이며 딸이기 때문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3. 일어나 곧게 나아가 고침을 받으십시오!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우울함과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피하십시오. 히브리서를 받았던 수신자들은 “영적인 탈골상태”로 약하디 약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그들이 유혹을 받아 믿음을 저버리고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유대주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주께로 돌아와 그들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을 새롭게 함으로 고침을 받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징계하셨던것입니다.
  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십시오. (12:14) 화평은 “쓴 뿌리”를 위한 해결책입니다. 화평은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사역의 기초 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화해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그의 용서하심을 받고 모든 사람에게 그 용서를 자유롭게 베푸는 것입니다.
  5. 거룩함을 따르십시오. (12:14-17) 하나님께서 “광야의 경험”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서 죄를 제하시고 그로 인한 모든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도록 우리를 내어 드리십시오.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그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그분 안에서 안식하십시오.

 

히브리서 12:18-24 시내산과 시온산

히브리서의 저자는 옛 것과 새 것, 그림자와 실재,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한 비교의 절정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시내산은 옛 언약, 곧 율법을 상징합니다. 시온산은 새 언약, 곧 은혜를 상징합니다.

산이 상징하는

시내산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간의 방황을 시작하던 때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그리고 레위 계통 (아론 계통의 제사장 조직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방황, 진정한 안식에 이르지 못한 실패, 그리고 그들의 죄와 반역으로 인한 죄책감와 정죄를 상징합니다.

시온산은 갈보리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 드러난 새 언약,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를 가져다주고, 영원한 안식의 통로가 되며, 지성소가열리도록 해 준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이 세워진 것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두 산을 대조하여 말했습니다. 시내산은 하갈, 종, 옛 예루살렘입니다. 시온산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며, 자유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는 이사야 54:1절을 인용하여 잉태하지 못했지만 나중에신실한 자들의 어머니가 된 사라를 가리켜 말했습니다.

당신은 시내산에 이르지 않았다.

저자는 시내산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한 것이 그 산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만질 수 있는 산.
  • 불이 붙는 산.
  • 흑암과 침침함과 폭풍,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으나 듣는 자들을 더 말하기를 구하지 않던곳이었습니다.
  • 매임, 두려움, 안식 없음, 불순종, 신실하지 않음

당신은 시온산에 이르렀다.

우리는 시내산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 매임, 두려움, 안식 없음, 불순종, 신실하지 않음, 죽음.

우리는 시온산에 이르렀습니다. –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안식 안에 있습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 – 종말론적 믿음. 지금은 시편 48편을 읽기에 적당합니다.

시온산의 7가지 축복 (완전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함에 이릅니다.)

  1.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1. 이것은 아브라함이 바랐던 도성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11:10)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입니다. 히브리서 12:22절은 우리가 이미 새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게 될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실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종말론적 현실입니다! 천국이 지금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기쁨과 끊이지 않는 평강을 가지고 신부로서 새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사랑스럽고 친밀한 교제 안에 들어왔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입니다. (요한계시록 21: 21:1-4; 10-11; 21:27; 22:1-5) – 그 곳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하나님께 속한, 친밀함, 끝없는 하나님의 임재,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은, 다시는 사망이 없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입니다.
    3. 미래를 향한 우리의 소망 –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거기 이르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대한 확신 또는 자신감입니다. 우리는 이미 새 예루살렘의 중심인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있습니다.
    4. 이것은 예수님께서 휘장을 찢어 내실 때 우리가 들어가도록 이끌어주신 영광입니다. 그는 지성소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의 임재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우리를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죽고 난 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영원히 들어가게 되겠지만 놀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과 이러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남가주 대학교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유명한 철학였으며, 더 중요하게는 많은 사람들의 “영적 아버지”였던 고달라스 윌라드 (Dallas Willard)가 죽기 바로 직전에 “내가 죽으면 나는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수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이유일 것입니다. 그는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았습니다.

  1. 잔치 자리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 (NJB에는… 수백만의 천사들이 잔치를 위해 모인 곳! 이라고 쓰여있다.) 우리는 허다한 천사들의 잔치 자리에 왔습니다.
    1.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천사들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그들과 함께 기뻐해야만 합니다.
    2. 천사들의 주된 의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11-12; 이사야 6장) 그들은쉼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3. 그들이 모인 “잔치 자리”는 아마도 어린양의 혼인 잔치일 것입니다.
    4. 우리는 오늘 예배하는 중에 천사들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예배하며, 우리는땅에서 예배합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우리는 땅에서 행합니다.
    5. 천사들은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1:14). 우리를 돕는 천사들이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그 일을 더 잘 행할 수 있습니다.
  1.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
    1. 우리는 이 땅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기록되었습니다! (빌립보서 4:3) 그렇지만 아직 하늘에 모이지 못했습니다!
    2. 보편적 교회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 걸쳐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단이나 예배의 형태와 상관없이 역사 상의 모든 세대와 국적, 인종을 통틀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입니다. 이것은우리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말할 때 우리는 편협하고 당파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개 우리는 “내 교회” 아니면우리 교단, 또는 국적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교회”를 다른교회들과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로 비교하기에 바쁩니다. 우리는 비판적이며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천국은 이 땅에서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차이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분의영광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맞아들이고, 연합가운데 함께 섬기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1. 만민의 심판자, 하나님
    1. 만민의 … 하나님 – 그분만이 유일한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고, 온 우주의 모든 사람들의 주이십니다. 우리는 만유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모든 사람들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만유의 심판자이십니다. 히브리서 9:27절은 우리에게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들이 심판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 불신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심판의 보좌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서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거절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3.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은혜의 보좌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건짐을 받았고, 심판자의 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심판자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판단 받게 되겠지만, 영원한 구원을 위해 심판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받아 심판이 그들 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1. 온전하게 의인의 영들
    1. 그들은 땅에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지금 본향에서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8
    2. 여기에는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모든 증인들, 그리고 땅에 그들의 몸을 남긴 채 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포함합니다.
    3. 성도들은 천국에서 온전케 됩니다!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우리가 경주하며 나아가도록 그들이 세운 기초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분명한 진리는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11: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들을 불러내는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인도했던 것과 같은 믿음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그들과연합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하는 가운데 그들과 연합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를 지켜보면서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응원하고 있다” (히브리서 12:1)고 말하지 않을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과 보좌를 둘러싸고 함께 서서 맞이하게 될 최종적인 완전함을 고대합니다. (히브리서 11:40절을 기억하십시오.)
  1.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1. 그는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으며, 그래서 그의 피를 “새 언약의 피”로 부릅니다. (히브리서 13:20)
    2. 새 언약의 모든 약속들은 우리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3. 히브리서는 예수님께 나아와예수를 생각하며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라는 가장 큰 격려를 줍니다. 예수님은 천국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삶의의미가 됩니다. (빌립보서 1:21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어떤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될 때, 우리는 깊은 슬픔과 동시에 그 사람이 주님과 함께 영원한 본향으로 갔다는 커다란 기쁨을 느낍니다. 이 편지를 처음 받은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유대주의로 돌아갔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인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고, 본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1. 아벨의 피보다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1. 이것이 놀라운 천국의 신비입니다! 예수의 피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매일 매 순간우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2. 이것은 정의와 징벌을 위해 외치며 호소하는 아벨의 핏소리가 아닙니다. (창세기 4:10)
    3. 이것은 정결함과 용서, 지성소가 열림으로 화평과 화해를 가져오는 예수의 핏소리입니다. 시은좌 (은혜의 보좌)에 뿌려진 피입니다. 예수의 피는 오늘 우리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위해 변론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거기 이르렀습니다! 이 곳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쁨과 급진적인 용서, 그리고 인종이나 국적, 또는 교단이나 예배 형태의 차이와 관계 없이 우리와 함께 이러한 삶을 나눌 모든 사람들에게열려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새로운 삶 안으로 이끄셨고, 이일곱 가지의 놀라운 축복의 한복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놀라운 구원을 우리 마음에 드러내어 주시도록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2.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징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이러한 사랑의 징계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징계를 통과하게 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3. 우리는 시온산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개인적으로 천국의 종말론적 (말세) 실재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지금 이런 때에도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줍니까?

 

 

           

 

 

 

 

 

This entry was posted in Uncategorized.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