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히브리서 4:3-16 하나님의 안식,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길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브리서 4:9)
약속된 하나님의 안식은 무엇입니까? 거기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안식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 (토요일)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제4계명은 신약으로 옮겨지지 않은 유일한 계명입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특정한 날을 지키도록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의 날인 “주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값 주고 사신 영원한 안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을 부활의 날로 기념합니다. 그러나 일요일은 구약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아닙니다. 영성 저술가 쟌느 귀용 (Madame Jean Guyon)은 “이 날에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서 주님의 작고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나, 피로를 풀기 위해 쉬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회적 또는 정치적 안정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
그것은 믿음의 안식입니다. (히브리서 4:3) 믿음은 우리에게 안식을 줍니다. 그 근원이 하나님 안에 있기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그가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해줍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안식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 안으로 들어오도록 우리를 초청하는 초청장입니다. 우리는 다른 누구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은 “오, 하나님. 당신께서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가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의 영혼에는 안식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말했습니다. “이미 그의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4:10) 무엇이 “우리가 행하는 자기의일”입니까?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을 “죽은 행실”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6:1, 9:14) 죽은 행실은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 아니며,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시작한 자기주도적인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계획을 좋아하실 거라고 “추측”했을 뿐입니다. 죽은 행실은 믿음 안에서 행하지 않은 모든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율법의 행위”, 즉 종교의식이나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을 통해 더 영적으로 보이기 원하는시도 등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수고는 종종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의롭게 보이려고 시도하는 행위들로나타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행동 같은 것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안식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 생각에서 비롯되어 행하려는선한 행실들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며, 히브리서에서 우리 믿음의 기초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안식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에 참예하는 자로 삼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확신가운데 알게 해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고, 그들은 전쟁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그들을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으로 이끌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것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아, 그 뜻 안에서 살아 내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뜻이 그 안에서 완성되게 하시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셨습니다.” (빌립보서 2:5-8)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고 기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알고 그 안에서 쉼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세상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때에도 깊은 영의 안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창조사역 중에 안식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주도하여 시작한 일들 속에서도 안식할 수 있다는것을 압니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열심을 다해 일하기 원합니다. 이것은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깊은 동행 가운데 그와 함께 하도록 우리를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때로는 소진되는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를 통해 큰 일을 행하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의 이 같은 권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로새서 1:29)고 말씀합니다.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다 영광과 존귀를 늘 돌리세!”라는 찬송가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안식할 때, 주님께서는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1961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우리는 한국어를 배우는 데 열중했습니다. 평일에는 매일 7-9시간씩 2년동안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좋은 학습 결과를 내지 못하는 동안 지치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영락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는데,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설교를 매주일 들었습니다. 우리는무슨 말씀을 전하시는지 모를 때에도 “알아듣는 척”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1년쯤 뒤에 놀라운 일이일어났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완전히 이해했던 설교 제목은 “오직 예수”였습니다. 우리는 언어만을 배웠던 게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같이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히브리서 4:11)
히브리서 4:11-16절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두 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으로 이끌어준다. (4:11-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원천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책을 펼때, 그분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J.B. 필립스 (J.B. Phillips)는 신약성경을 번역할 때, 그 자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생생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집에 전선을 연결하며 일하는 전기 기술자와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전기를 끄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는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으로 인해 살아 있고 활력 있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해서 우리의 모든 마음의 생각과 의도들을 찔러서 쪼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완전하게 보시며, 하나님의 안식 안으로 인도해 줍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다섯 가지 중요한 목적을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깨뜨립니다. 예레미야 23:28-29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죄와 의미없는 생각들을 태우는 불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를 부서뜨리는 방망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완고함을 깨뜨려 주님께 부르짖도록 이끌어 줍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합니다. 시편 107:19-20절은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영혼과 생각, 감정, 그리고 육신의 치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말씀 안에서 만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먹이십니다. (예레미야 23:28) 오늘 주어지는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날마다 먹고 우리의 영혼을 부요케 하십시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재형성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의 길을 따르지 말고, 우리 마음과 생각의 방식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형성되도록 우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습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읽어본다면, YWAM의 성경연구학교 (School of Biblical Studies: SBS)를 처음 설립한 론 스미스 (Ron Smith)의 아내 주디 스미스 ( Judy Smith)가 발견한 능력있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아무 것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말씀을 멈출 수 없다!
-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해 줍니다. (히브리서 4:14-16)
예수님께서는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승천하시고 하늘로 오르셔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장막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성소인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들어가려면 우리를 인도할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리로 인도할 분은 우리와 완전히 동일시되었지만 가장 높임을 받으신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아버지의 임재 안으로 인도하여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1-5)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로 이끄실 때 아버지께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히브리서 2:13)고 말씀하십니다.
매일 아침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들이 받게 되는 두 가지 선물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와 자비입니다. 자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그것을 망각의 깊은 바다로 던져 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의 보좌로 가까이 나아갈 때 처음으로 자비를 입게 되고 하나님께서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랑하며 용납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그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는 은혜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에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가장 잘 떠올리게 해 주는 놀라운 찬송가는 찬송가 251장 “놀랍다 주님의큰 은혜”입니다.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 양 보혈을 흘렸네
<후렴>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하나님의 안식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보낸 뒤,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가 은혜와 자비를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