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brews 한글로 제4과

제4과

 

히브리서 2:10-18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반복되어 언급되는 세 가지 주제가 이 중요한 구절에서 발견됩니다.

낮추심 –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높아지심 – 예수님은 사탄과 모든 악의 권세를 다스리시기 위해 높아지셨습니다.

구속하심 – 구원

이 주제들의 반복은 베토벤 교향곡 9번과 같은 하나의 장대한 교향악을 떠올리게 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 주제들을 반복되어 들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계속해서 읽고 공부할 때 우리는 이주제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의미

구원에 대한 이 설명을 읽을 때 저는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해졌습니다. 히브리서 2:1절은 우리에게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모든 기독교 신학의 핵심입니다. 이 하나의 주제가 신약성경 모두에 일관되게 담겨 있으며, 신약 27권의 책마다그것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 대학의 성서신학과 신약학 명예교수인 고든 피 박사 (Dr. Gordon Fee)는 우리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는 죄에대한 해결책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키워드를 사용했습니다.

  1. 속량 (Propitiation) –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 값을 치르고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통로를 열어주는 것
  2. 속죄 (Expiation) – 우리의 죄를 씻어 없애고 덮어주는 것
  3. 화해 (Atonement) – 우리 죄의 결과물들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것.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5:1-2)

이 단어들은 어려운 말들이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구원의 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완전한 희생을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 대가를 치르셨습니다(속량). 그의 보혈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으셨고, 우리 죄를 덮어주시고 그것들을 제거해 주셨습니다(속죄).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보혈로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되고 하나되었습니다.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히브리서 2:10-18절에서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낮추심 (겸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5-8) 하나님께서 구원을 가져오시기 위해 사용하신 가장 위대한 도구는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선택하셨고, 그것은 그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주 (창조자, 공급자)이신 그는 “고난을 통해 온전함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도덕적으로 완전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이미 모든 면에서 완전하셨습니다. 그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위해 필요한 희생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준비되셨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시편 113:5-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 속으로 들어오셨고, 우리의 고통을 나누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고난이 가지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8) 이사야 52:13-53:12절 (이사야서에 있는 네 개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 중 마지막)을 읽는 것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하나 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성결하게” 하셨고, 고난을 통해 우리를 정결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히브리서2:13) “성결하게 하시는 이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성결함을 입는 이 (거룩하게 된이)가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1).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바울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 빌립보서 2: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표현했습니다. 높아지심은 낮추심을 따라갑니다. 똑 같은 낮추는 것과높이는 원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6-7)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적 위기의 때에, 우리 영혼이 원수의 손에 있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을 향한 마귀의 공격에 힘없이 맞설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때에 시편 31편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편기자가 주님께 기도하면서 고백할 때,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고백하며 가졌던확신 또한 기억하십시오. 뉴예루살렘 바이블 (New Jerusalem Bible; NJB)은 이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여호와의 손에 있사오니, 나를 쫓는 적들의 손아귀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편 31:15번역)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 그리고 악의 모든 권세는 온 세상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에 있습니다.

 

구속하심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고,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14-15)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8)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시작

이 큰 구원을 우리는 어떻게 경험하게 됩니까? 어떻게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더 이상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과,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고, 우리의 남은 삶 동안 믿음 안에서 그분을 따르기로 헌신함으로써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이 같이 큰 구원의 자유와 힘을 오직 공동체를 통하여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진실로 우리의 사귐(공동체적 삶)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9)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힘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때문에 우리는 형제 자매들과 친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성령이 이전에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을 이끌어 와서 형제 자매로의 초자연적인 변화를 입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함께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970년대 초,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대학교 (Emory University)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 친구와 나는 오순절과 현대의 성령 역사에 대한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논문을 함께 준비하는 동안 그 친구는 “예수님의 혈통에 피부색은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나 진실된 말입니까?특별히 인종차별과 편견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입니다. 교단이나 국적, 인종, 정치, 사회적 입장과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가 기꺼이 편견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교제 안에서 함께 걷기 시작할 때, 우리의 구원의 깊이와 높이, 그 힘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귐을 서로 나누며 그것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온 세계를 초대합니다. (요한일서 1:1-4) 공동체 안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역사 속에서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하나님의 가장 큰 목적은 그가 영원히 거하실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큰 구원을 받아 하나님처럼 될 사람들을 찾고 계시며, 그리스도께서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며 세상의 잃어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삶을 희생할 만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참고, 역대하 16:9상)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찾으실 때,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koinonia)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공동체의 가장인 아버지이십니다.

언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시작되었을까요? 그 시작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부터였습니다. 히브리서 2:14 –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습니다.”하나님께서 죄가 많고 타락한 세상에서 고난을 함께 지니셨습니다. 헬라어의 “함께 지니셨다(partook)”는 말인 메테스켄 (meteschen)은 코이노네오 (koinoneo)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로 그 의미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신으로서만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실제로 사람이 되셨고, 우리의 본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는 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우리와 정확히 같았습니다. 공동체로 향하는 첫걸음은 “동일시”입니다. 그것은 내가 형제 자매들과 동일한 존재임을 깨달아, 우리가 살아있고 유기적인 관계를 서로와 함께맺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을 내려놓으심으로써 우리와 동일시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가 없으셨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을 경험하셨고, 주어진 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연약함가운데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온 세상의 죄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는 사람으로 죽으셨고, 동시에 하나님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우리와 완전히 동일시하셨기 때문에, 두 가지 위대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1. 예수님은 마귀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통해서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 곧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셨습니다.” (2:14-15) (요한일서3:8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두려움과 사망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까지계속해서 공격합니다. 마귀는 공황과 극심한 공포를 사용해서 가장 힘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공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옆에 계속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승리를 하도록 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한일서 4:4)

 

  1.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 (대속)하려 하심이라” (2:17) 완전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대속물로 드렸습니다. 또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그는 용서와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사람으로서 시험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시험당하는 것을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이 같이 큰 구원” 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삶은 하나님의 이 같이 큰 역사로인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2.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우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고 하는베드로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이것에 대해 당신은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3.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공동체를 통해 어떤 면에서 힘을 받으셨습니까?
This entry was posted in Uncategorized.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